호밀밭의 파수꾼 독후감
줄거리 1
주인공은 홀든 콜필드.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사람들의 속물근성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재 펜실베이나에 있는
펜시 스쿨에 전학을 와 지내는 상태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식적인 학교의 광고,
그에 맞지 않는 저질스런 학생들.
권위의식에 쩔어있는 선생들 등등.
결국 학점을 다 따내지 못하고 퇴학처리 되었고
지긋지긋한 학교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 와중에도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역시 그들에게 역겨움을 느끼며
온갖 경멸을 느끼는 홀든이다.
그런 그도 순수하다 생각하는 수녀들이나
아이들 혹은 오리와 같은 동물들에게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돌고 돌아 여동생 피비에게 도착한다.
피비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기쁘게 했고
피비의 질문에 자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내 생각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매우 일관적이고 한결같아서
부분 부분으로 나누어 보지 않고
그냥 쭉 읽어나가게 되는 책이었다.
홀든이라는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란 것이
그 대상만 바꾸어가며 벌어지는 상황이다.
부모, 친구, 남, 여, 종교, 사회, 아이 등.
쭉 보면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가로졌다가를 반복했다.
뭐랄까. 맞는 말이지 하면서도
이건 좀 심한데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내면에 감춰놓았던 정의감이
불쑥 불쑥 올라오곤 하는 걸 느끼면서
애써 그걸 다시금 가라앉히는 걸 느끼게 되었다.
처음엔 그럴 수 있지 하며 읽던 것이
계속되는 불평불만 속에 중2병이란 게
이런 것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령 그 불만이란 게 사실일지라도
정말 듣고 있기 힘들어지면서
너나 잘 해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 또 왜일까.
모두 내가 가졌었던
혹은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안에 감춰두고 있던
이 정의감은 왜 이리 철없이 보이는 걸까.
일단 홀든이나 어릴 때의 나나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불만은 산처럼 쌓여가는데 딱히 대책은 없다.
나도 홀든 처럼 생각하는 마음이 한가득했고
지금도 쓰라고 하면 얼마든지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써낼 수 있다.
그리고 조금이지만 쓰려다보니 중독되는 듯하다.
아 정말 쓸게 많다.
인간들 혐오하고
잘못된 구석 짚어가며 씹기란
정말로 쉽고 중독성이 짙은 듯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혐오감을
유발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지나치게 혐오감을 갖고 사는 사람들도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그렇고 사람들은
혐오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그에 대한 혐오감도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홀든처럼 지나치게 혐오감에 쩔어살며
타인을 소닭 보듯이 하는 사람도 재수 없다.
이렇게 맞는 말과 맞는 행동도
지나치니까 재수 없이 보이는 것이다.
뭐든 흔히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생활지침들이 이렇게 재수 없어 보이는 것은
나만 그런지 모르겠다.
이정도로 순수성을 지향하며 그 외의 사람들을
혐오할 정도면 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중2병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홀든이 마침 16세였다.
아무튼 홀든을 보면서는 개인적 감정을 떠나
타인을 지나치게 혐오하던
내 어느 시절의 심리와
사춘기 학생들의 심리
그리고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사는
어른들의 심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병적이긴 해도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앓고 지나가는 병에 대한 관찰과
그런 사람들과 시절에 대한
대처에 대해 고민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게 어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것도 생각해본다.
이 병이 치유되지 않은 채로 큰
어른아이는 널렸다.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나는 인간의 순수함.
그것을 고이 간직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치유해야 할 병을
방치하며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순수함, 청년의 순수함, 어른의 순수함.
직업과 사회적 위치별 순수함 등등
모두 업그레이드 되어가며 살아가야 하는 데
어릴 때의 순수함을 계속 간직한다는 것은
큰 병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 일할 때
아이의 순수함을 꺼내들어 광분하고
사교모임에서
아이의 순수함을 꺼내들어 광분하고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순수함을 꺼내들어 광분한다.
순수함이라고 해서 다 같은 순수함이 아니다.
그게 다 같다고 생각하고
다 같이 적용하려는 그게 아이 같음이고
중2병이고 어른아이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언제부터 아이가 어른이 되고
그 구분이 생기는 걸까.
순수함을 잃으면 어른이 되는 걸까.
아니다 내 생각엔 어른이 되어서도
순수함은 갖고 살아야한다.
다만 아이와는 달리
순수함을 표현하는 게 다르다.
뭐든 양분해서 내 중심적으로 판단하다보니
반대쪽이 순수하지 못하고
내 쪽은 순수하게 느낀다.
그러다보니 번번이 싫은 것
투성이가 되버리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대로 다 될 것이고
그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랬기 때문에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성숙해지면 자기 보다는
세상 중심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내 뜻대로 다 되지도 않고
그리 된다고 해서 꼭 좋은 세상이라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다고 꼭 세상 중심적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세상을 등지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살아가려는 홀든이 마치
외줄타기 하듯 위험 해 보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홀든 자신도 타인에겐 세상이다.
홀든 부모의 세상이고
동생, 애인, 친구의 세상이다.
세상을 등지려는 것은 결국
스스로도 세상이길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런 홀든이 어찌해야
외줄타기를 멈출 수 있을까.
내가 싫어하는 것만을 골라내고
나눠 내는 것을 멈추고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동생 피비가 홀든에게 질문한다.
‘오빠는 다 싫지? 진짜 좋아하는 거 하나만 대봐’
홀든은 대답을 쉽게 하지 못했다.
싫은 것만 바라보고 싫은 것만 찾아다녔지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나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이 얼마나 괴로운 삶을 살았다는 증거인가.
피비의 질문에 대한 답이
빨리 나올 수 있을 만큼
정말 좋아하는 것이 생긴다면
홀든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정말 좋아하는 게 없어서
그렇게 싫은 것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생각 2
내가 순수함을 지키고 싶었던 그 마음.
그 순수함을 지켜내고 싶던 것으로
가슴 벅찼던 그 마음을 잘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그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간직하고 있다.
주인공의 모습은
순수함이 어떤 감성인지
그 순수함이라는 특성을
잘 표현한 모습이고
하나의 성질로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미소가 지어지는 걸 종종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순수함이란 건 긍정적인 마음이다.
하지만 매번 순수하거나
자주 순수한 사람을 보면
아이가 아니고서는
이상하게 보이거나 질리게 마련이다.
순수함은 분명 좋은데
항상 순수하면 이렇게 문제가 된다.
늘 순수한 사람, 늘 때 묻은 사람,
늘 착한사람, 늘 악한사람.
뭔가 딱 얘기만 들어도
멀리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때론 순수하고
때론 때 묻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때론 착하지만 때론 나쁜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더 가까이 하고 싶다.
성장통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그렇게 늘 그런 사람에서 벗어나
언제 그런 사람이 되어야하는 지를
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 순수해야 하는지,
언제는 순수하면 안 되는 지
언제는 착하게 굴어야 하고
언제는 나쁘게도 해야 하는 지
이런 걸 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줄거리 2
피비와 얘기한 후 잠시 나와서
자신에게 잘 해 주었던
안톨리니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선생님은 인생충고도 해주고
홀든을 걱정한다.
그러나 힘든 홀든을 재워주고 챙겨줬지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선생님을 변태라 생각하여
그 집을 다급히 도망 나오게 되는 홀든이다.
홀든은 서부로 가서 혼자 살고 싶어 한다.
아무랑도 얘기하지 않고 듣지도 않고
혼자 알바로 밥벌이하며 조용하게 서부에
오두막집 하나 지어서 살 것이고
아내도 그런 자기같이 조용한
여자 하나 얻어서 살 것이다.
그리고 피비 외에는
특별히 오라고 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
마지막으로 피비를 만나
인사하고 서부로 떠나려한다.
피비를 기다리는 동안
상스러운 낙서를 발견하고
지우고 또 지우고 낙서 한 사람을 증오하는 홀든.
마지막엔 그동안의 방황과
지침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다시금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내 생각
안톨리니 선생님의 이야기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육제도는 나쁠지언정
교육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 받고 지식이 있는 인간만이
세상에 가치있는 공헌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이 있는 인간 쪽이 훨씬 더
가치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것.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도
더 겸허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같은 조건이라면 교육받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더욱 좋은 기록을 남기기 쉬우며
겸허할 수 있다.
나쁜 교육제도를 비판하며
공부하지 않은 홀든에게는
정말 따끔한 충고이다.
왜 그렇게들 어린애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할까.
그것은 단순하게는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취직을 하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다.
과연 필요 없는 지식이란 게 있을까.
다만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사상에 따라
나쁘게도 좋게도 쓰여지는 것일뿐
필요 없는 지식이란 건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뭘 알아야 비교도 하고 자신의 위치나 생각이
어떠한 지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인데
홀든의 이런 성향은
좁은 견해에서 온 것일 수 있겠다.
그리고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구현하고 싶어도
역시 뭘 알아야 구현 할 수 있으니
선생님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저 남 욕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공부하든
안 된다면 그냥 살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안톨리니 선생님의 충고를 보자면
홀든은 현재 방황중이라는 늬앙스가 풍긴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기가 놓여있는 환경이
도저히 제공해줄 수 없는 어떤 걸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의 네가 바로 그렇단다’
선생님의 말대로이다.
홀든이 바라는 세상은 없다.
어딜가나 부딪히는 대로
그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아마 서부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어 했을 것이다.
내 생각 2
홀든은 자신이 때 묻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순수한 사람들,
예를 들면 옛 여자 친구나
여동생 혹은 아이들이
물드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순수한 영혼들이 물들어가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자신이 후딱 가서
그들을 잡아주겠다는 것이다.
내가 몇 년 전이었으면
아마 굉장히 공감하며
홀든의 입장이 되고
홀든을 응원하며 읽었을지 모르겠다.
‘홀든 잘 한다
나도 홀든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더러운 인간들로부터 우리
순수한 영혼들을 지켜야 하는 거야.’
하지만 지금의 나는 홀든이라는 사람을
가슴 한 켠에 두고자한다.
이 세상에 홀든과 같은 아이들
혹은 어른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홀든을 이해하고자한다.
그가 철이 없거나 나쁘다는 생각 말고
수많은 홀든이 생길 수밖에 없게끔
세상을 가식적으로 만든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서
홀든을 응원하고자 한다.
왜냐면 그가 계속하여 사람들을 저주하고
경멸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누워서 그 친구들이
그립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고
그들과 어울리고 싶으며
때로는 그들에게 기대기도 하고 싶지만
그들에게 상처를 입어서
함부로 다가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발톱을 세우고 있는 길냥이들이
홀든과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사랑받으며
자란 고양이는 인간 친화적일태지만
처음부터 상처받은 고양이는
인간을 경계한다.
그리고 조금 더 길가에 적응된 길냥이는
적당히 인간을 경계하며
자신이 먹을 것만을 취하고 도망 다닌다.
홀든이 상처받은 고양이라면
이제 시간을 두고 성숙해져서
인간들을 마냥 두려워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은 취하며 사는
길냥이가 되길 바란다.
나도 겪었던 홀든이고
많이들 겪었던 홀든이지 싶다.
세상을 향해 그저 꼬리를 치며 살 수는 없고
언제든 발톱을 세울 준비를 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누구든 겪는 일이지 않나 싶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이상을 위해 죽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이상을 위해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안톨리니 선생님이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를 빌려
홀든에게 해준 말이다.
이상을 이루고 싶으면 죽으려 해선 안 된다.
독립 운동가들이
이상을 위해 처음부터 죽으려고 했나.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니 죽은 것이지
살 수 있었다면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상을 이루고 싶었을 것이다.
위에 썼다시피 이루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한 가지만 있어도
그것을 위해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 한 가지를 찾는 것부터가
어른이 되는 일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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