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독후감
줄거리
주인공은 노라.
남편이 은행장으로 취직하게 되어 굉장히 들떠있다.
옛 친구가 찾아와 취직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에도
남편에게 부탁하여 사무직 자리를 하나 알아봐 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그로그스타트’ 라는 남성.
이 남성은 남편이 취임하기로 한
은행의 매우 부패한 은행원이라 한다.
그는 노라 남편에 의해 해임되기로 결정 되어있었는데
노라를 찾아가 협박하며
자기 자리를 유지하게 해달라고 한다.
협박의 이유는 과거 노라의 남편이
아팠을 때 노라가 돈을 빌렸던 일.
돈은 갚으면 되지만 당시 돈을 빌릴 당시
차용증에 쓴 노라 아버지의 서명이
날조된 것이라는 것이 빌미가 되었던 것이다.
부탁을 들어주기도 불가능.
남편이 알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노라.
결국 남편을 설득할 수는 없었고
그로그스타트는 남편에게 밀고하는 편지를 남긴다.
남편은 편지를 접한 후
그동안 노라를 예뻐하던 그런 모습과는 정 반대로
노라를 매우 나무라는 언행을 하게 된다.
잠시 후 그로그스타트가
차용증을 돌려주고 자신을 반성하는 글을 남겼고
위기를 넘긴 남편은 노라에게
다시금 그전처럼 잘 살아보자며
고운 말과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노라는 위기를 벗어난 이후에 큰 결심을 한다.
자신이 남편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알았다고 하며
집을 나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홀로 살겠다는 것이다.
남편의 이런 저런 만류에도
결국 아이들과 남편을 두고 집을 박차고 나가는 노라이다.
내 생각
대본 형식으로 된 고전이다.
마치 연극 무대를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서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책이 끝나고 나서는 벌써 끝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노라의 남편이 노라를 부르는 호칭인 ‘종달새’가
머릿속에 뱅뱅 도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종달새 오늘도 단거 많이 먹었어?’
‘우리 종달새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다니까’
‘우리 종달새 이제 행복하게 살자구~’
아무튼 노라는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는 게 분명 해 보인다.
말하는 걸 보면 상대방이
속을 뻔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말들을 한다든가.
계획성 없이 일단 돈을 쓰고 보는 씀씀이라든가 말이다.
그리고 그런 노라를 귀여운 인형처럼 대하는 남편이다.
마지막에 노라가 남편의 본성을 접하고 집을 나가긴 했지만
그로그스타트가 나타나서 협박하기 전 까진
부유하고 행복한 그런 평화로운
가정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내가 책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르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노라가 마지막에 했던 말들의 저의가 무엇이었나.
이를테면, ‘내 인생이 재미는 있었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라든가.
‘만약 다시 돌아와 당신과 다시 살 수 있는 기적이라는 건
동거 생활이 아닌 결혼 생활이 될 경우라는 것’이다.
이는 일단 자신이 남편과 살아온 8년간의 결혼생활이
결혼이라기 보단 동거와 같이 느껴졌다라는 말이고
분명 재미는 있었다만 행복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 그 근거가 무엇일지
생각 해 보면 살면서는 잘 몰랐다만
이제와 돌아보니 자기가 꿈 꾼대로 살아본 게 없었다든가
혹은 꿈이란 것이 없이 살아왔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특별히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았다 하더라도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보니 이게 전부 남편이
원하는 대로 이뤄진 것이다.
혹자는 이 상황을 보며 여자가
배가 불러서 투정하고 있다느니
아이에 대한 무책임을 운운하며 비난 할 수도 있겠다.
결과만 보면 어쨌든 가족들
다 버리고 나온 일이긴 했으니까.
그런데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싶다 정도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맞다.
아이 키우는 재미, 맛있는 거 먹는 재미, 자랑하는 재미,
이런 저런 재미는 분명 있는 삶이었다만
정작 꿈이 있었냐고 하면 그렇지 못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 꾸리고
평생 평화롭게 살다 가는 것을 꿈이라 하며
그렇게 살면 자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다.
노라도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보통의 여자들처럼 자신을 예뻐해 주는
남편과 부족한 것 없는 가정,
사랑스런 아이들.
어느 여자들이라도 꿈꾸는 그런 삶이다.
그런데 누구나 원하는 삶이
누구보다도 싫어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면 크든 작든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이뤄진다면 행복할 것이고
아무리 커도 간절하지 않았던 것이 이뤄진다면
행복하진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라는 지금의 삶이 자신이 간절히 원하고
노력해서 이뤄진 것이라기보다는
남편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었다.
그것이 살면서는 잘 몰랐지만
막상 그런 삶을 살아보니 허무한 것이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함부로 험담을 해선 안 된다.
자신들이 바라는 삶이라고 해서
상대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을 흔히 하는
어린애 투정이나 배부른 소리로 보는 것이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재미와 행복을 착각하며 살기에
후에 가서 허무함을 느끼든가 아니면 계속 그게 행복이라
착각하며 살다 가는 일이 많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세상 노라와 같은 인형은 얼마든지 많고
나 역시도 방심하는 순간
인형이 되길 바라며 살고 있을 수 있다.
나를 어찌 해주길, 어디서 뭔가 떡하니 주어지길.
그러니 인형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순간부터이다.
가정을 버리고 뛰쳐나온 노라.
그것은 내가 보기에 여성 해방도 아니고
단순 반항도 아닌
내 인생을 더 이상 누군가에게 종속시키기 싫다는
불행으로부터의 탈출이라 생각한다.
스토리는 집에서 노라가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후에 어찌 되었더라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탈출 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래서 잘됐다 잘못됐다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내생각 2
노라가 말하는 기적이란 것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동거가 아닌 결혼 생활이 되어야한다는 게 뭘까.
스토리상 보자면 남편이 편지를 접한 후
호되게 뭐라 할 때의 태도 문제이다.
노라 당신은 믿을 수 없고
아이도 맡길 수 없고 비도덕적이고
남편인 내 인생을 다 망쳐놨고
친정아버지 닮아서 그렇고 어쩌고
온갖 구박은 다하는 남편의 태도.
여기에 노라가 꼬집는 핵임은
남편이 스스로의 명예를 포기하지 않고
노라만 계속해서 나무라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었다.
잘못한 걸 부정하는 그런 게 아니라 잘못은 했을지언정
그것을 아내 개인의 문제가 아닌
부부 공동의 문제로 생각해서
남편 자신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인 것 같다.
바로 이게 노라가 남편에게 말하고자 했던
기적이자 결혼생활 아닐까.
그리고 그걸 기적이라 한 것은
그만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 일 것이다.
아마 동거라는 것은 그냥 같이 살면서
의식주를 같이 해결하는 그런 재미 위주의 것
혹은 소꿉장난 같은 인형놀이에 불과한 것이라면
결혼이란 것은 잘한 것이든 잘못 한 것이든 부부가
그 공과 업을 나눠 갖게 되는 그런 일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잘한 것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잘한 것이 되어야 하고
내가 잘못 한 것은 다 내 잘못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야말로 인형의 집에 사는 인형의 처지와 똑 같다.
인형을 사온 것도 집을 만들어준 것도 주인님.
인형이 이쁜 짓을 하면 그건 잘 꾸민 주인의 공덕이지만
인형이 미워지면 낡아버린 인형의 잘못이다.
이렇듯 순간의 말 하나는 평소
그 사람의 철학을 말해 주는 듯하다.
노라는 남편의 그 위기 상황에서의 말 몇 마디에서
남편이 가진 자신과의 결혼 철학이
어땠는지를 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결혼이든 뭐든을 떠나서라도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이 평소 그것을
어찌 생각하는 지 그 사람의 철학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결혼을 할 때에도 그 무엇을 할 때에도
아무생각 없이 그냥 시작하거나
재밌으니까 시작하는 그런 일은
결국 그 태도에서 들통이 나니
노라와 같은 희생자를 낳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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