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독후감 3
줄거리
6장
쉬던 한스는 마을의 과즙 짜는 일에 초대되었다가
그곳에서 엠마라고 하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엠마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심장 뛰는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엠마는 그의 마음에 불만 지르고 사라졌다.
한스를 노리개 취급 했던 것이다.
7장
아버지의 권유로 기계공이 된 한스.
체력도 약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도 아닌지라
기계공 생활이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그 곳에서 지내며 다른 기계공들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던 날 밤
아버지는 화가나 한스를 기다렸지만
한스는 결국 강에 빠진 시체로 돌아오고 말았다.
자살인지 사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 생각
한스가 뭘 알았나.
그저 어른들이 그게 좋다하고 잘한다 하고
으쌰으쌰 하니까 좋은가보네 하고 했지.
내 욕망이 아니라 어른들의 욕망이
마치 내 욕망인양 착각한 거지.
내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어쩔 수 없이
내 욕망으로 만들어야 할 수 밖에 없었겠지.
우리네 젊은이들의 현실은
이런 면에서 비참하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뭘 원하는 지는
생각하기도 전에 차단되고 남이 만들어 놓은
욕망을 좇아가는 일이 비참한 것이다.
돈도 벌어야하고 결혼도 해야하고
아이도 낳아야하는건 좋은데,
내가 만든 수레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어쩌겠나. 내 욕망대로 살다가는
입에 풀칠하기도 쉽지 않은걸.
그러니 금수저 은수저 얘기는 단순 돈의 비교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생각하고 이뤄가는
즐거움이 사라진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에서 오는
한 섞인 이야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사람들에게서
여러 가지 영양분을 빼간다.
여기에서 어떤 스포츠선수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학창시절 폭행으로 논란이 컸던 학생인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실력으로만 보면 어느 팀에서든 탐내는 선수이다.
하지만 이 선수가 인터뷰에서
지난 일에 대한 반성 없이
그저 앞으로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이야길 했던 것이다.
물론 댓글로 엄청 욕을 먹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런 인격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야구만 잘하면 되, 공부만 잘하면 되, 하나만 잘하면 되.
나도 어려서부터 정말 자주 들어오던 얘기다.
허나 이 말은 맞는 것 같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것저것 다 잘하려 하는 것 보다는
하나만 열심히 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라는 점에서는 맞지만
나머지 반쪽인 인성적인 측면은
제외한 상태에서의 말이니
결국 잘 해봐야 야구선수로는 최고,
사람으로서는 반쪽짜리가 되는 것이다.
내 생각 2
엠마를 만나면서 한스에게 일어나는
심경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에게 엠마의 존재는 마치 죽어가던 사람도 살리는
심폐소생술과 같이 느껴졌다.
죽을 자리를 봐두고 체념하며 살던 사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내게 되고 인생 살만하다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은
처음 겪는 사랑이라는 묘약 덕분이다.
이건 죽어가던 한스에게 찾아온
마지막 영적 접근의 기회라고 본다.
어머니가 없이 자라 어머니에게서 얻지 못한 기회,
메마른 아버지에게도 얻지 못한 기회,
그토록 좋아하던 친구로 부터도 얻지 못한 기회.
표현대로 한스는 죽어가는 사람이다.
꼭 몸이 아프고 피골이 상접하여 죽어가는 그런 뜻이 아니라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왜 그렇게 까지 사람이 죽어가는 동안
그 누구도 한스가 그렇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일까.
의사 역시도 신경쇠약임은 알았지만 치료제는 없었다.
바로 이것이 과학이나 의학이 해결 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영혼의 치료. 약이 없는 영혼의 치료이다.
그리고 이에 큰 관심이 없는 어른들의 수레바퀴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수는 없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만 하고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일들 즉 이끌려서 하는 일들은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내 삶의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등등
모두 해가며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숨통을 틀 만한 영적 교류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하일너는 제멋대로이고 불량하지만
어쨌든 문학적 접근을 통해 숨통을 트고 사는 인간이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수다와 연애를 수단으로 한 엠마나
일주일 내내 일하다 일요일에
술과 허세로 푸는 숙련공들이나
모두가 제 입맛에 맞는 출구가 있다.
한스는 사랑도 좌절, 우정도 좌절.
모든 숨 쉴 구멍이 좌절된 체 굴러간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그 숨통이 꼭 고상한 것이어야 한다면
그런 생각부터가 이미 숨 막히는 것 같다.
그런 거 말고 적어도 불행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출구는 마련해 두어야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이어도 좋고 우정이어도 좋고
종교여도 예술이어도 좋다.
이렇게 되고 보니 왜 책의 앞부분에
믿음은 의심보다 강하다는 얘길 했는지
과학과 예술을 대비하여
풍요로움을 얘기했는지 알법하다.
일주일 내내 일하다가 생긴
하루의 휴식을 술과 여자로 푸는 것,
수다와 연애로 푸는 엠마의 행위,
학문에만 열을 올리며 사는 마을 목사의 행위.
가문의 자랑 질로만 숨통을 트고 사는 아버지의 행위.
이 모두 자신들이 나름대로 살면서 터득한 숨통일 텐데
왜 한스에게는 한 치의 도움도 되지 못했던 것인가.
그것은 왜 사랑, 종교, 예술, 문학 등이
가치 있는 지를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가 바로 풍부함이다.
연애를 연애의 기술로 접근하여
흥미로 여기는 엠마의 행위,
일주일 중 하루의 휴가를 그저
취함으로 보내는 기계공들의 행위,
종교를 그저 학문으로서만 접근하는 목사의 행위.
모두 그저 기술적 접근일 뿐 영적 접근이 빠진 행위 일 뿐이다.
연애도 사랑으로 풍부하게 할 수 있다면,
술도 예술적으로 마실 수 있었다면,
종교도 학문이 아닌 믿음의 영역까지
풍부하게 접할 수 있었다면.
엠마는 한스를 살릴 수 있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고
기계공들의 술자리도 한스를 살릴 수 있는
예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며
목사의 설교도 한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는 다 나의 추측이기에 이만하고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영혼이 빠지고 그곳을 현란한 기술과 이론이 채워가는 현상이
이 세상이 풍요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문학이 좋은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이다.
비논리적이어도 좋고 설명되지 않아도 좋으니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가 잘 굴릴 수 있는 수레바퀴가 있다.
누군가에겐 쉽고 누군가에겐 어려운 일이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수레바퀴는
이런 다양성을 무시한 체 모두가
똑같은 수레바퀴를 굴려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마지막 한스의 장례식 때 교장선생님은
마을의 선생들과 어른들이 그의 죽음에 공범이라 한다.
공범이 맞다. 인간을 로봇으로 대한 것에서 오는 죄이다.
마지막 한스의 죽음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내 가슴에 비 내리는 것을 멈추면 안 되겠구나.
그것도 아주 잔잔하게 스며들도록 천천히.
태양에 증발되는 것에 맞게 적절히 부어주어야
너무 말라버리지도 넘쳐서 망가지지도 않겠구나.
내 생각 3
수레바퀴 아래서는
내가 본 헤르만헤세의 책 중 3번째이다.
데미안을 볼 때 까지만 해도 몰랐던 것인데
싯다르타를 거쳐 수레바위 아래서를 보니 알게 되는 게 있다.
작가의 연보를 보면 수레바퀴아래서가
젊었을 때인 29살 때 쓴 것이고
그다음이 데미안이며 노년에 쓴 것이 싯다르타였다.
세 권의 책을 읽고 나니 헤세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 일어나는
변화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느낌을 정리하자면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는
문제 제기와 문제의식이 강하게 들어나는 내용이었다면
데미안에서는 그 문제들에 대해
멀리서 관조하고 해석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그리고 싯다르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문제제기와 관조를 통해
결국 단일성이라는 말을 통해
원융과 통합의 자세를 취하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헤세는 싯다르타를 집필하며
중도에 경험부족을 이유로 집필을 중단하고
직접 경험하러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저자의 경험이 글 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헤세는 나이가 들어감에 있어서
계속되는 문제제기를 하기 보다는
세상을 관조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결국 원융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는
그런 식으로 사상이 변해간 것이다.
살면서 문제제기를 해야 할 때도 있고
관조해야 할 때도 있고
원융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확실히 어려서는
문제제기만 많이 하며 보내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제 문제제기는 적당히 하고 드러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융합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더 많이
생각하며 살아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렇게 책 한권 한권에서
배울 점을 얻어가는 경험 이외에도
한 사람의 시기별 여러 작품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을 보고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 가를
보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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