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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독후감

'한강' 채식주의자 줄거리 독후감

by 생각하는 남자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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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채식주의자

 

한강
한강

 

줄거리

 

어렸을 때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영혜씨.

 

하루하루 말라가는 그녀에게

가족은 강제로 육식을 권했지만,

그녀는 끝내 거부하며 자해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 후 영혜는 이혼을 하게 됐고, 

한동안 정신병원에 있다가 나왔다.

 

그러다 영혜의 형부는 처제인

영혜씨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고 그 순간 예술작가로서

그녀의 알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끝내 형부는 영혜씨에게 바디페인팅 모델을 권유했고,

서로 몸에 꽃을 그린 후 관계까지 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남기게 된다.

하지만 영혜씨의 언니가 이를 발견하게 되면서

영혜씨는 다시 정신병원으로 가게 됐고

영혜씨의 언니도 이혼하기에 이른다.

 

이후 정신병원에서 채식까지 거부하며 굶어 죽어가는 영혜씨는

자신이 나무로 변하는 듯한 환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영혜씨를 바라보는 영혜씨의 언니는 삶의 무게에 대해

절감하며 이 삶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느낀점

 

우리나라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는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축전을 거부한 사건으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5.18사건을 다룬 책을 썼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아무튼 말로는 참 많이 들어본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읽어보게 되었고,

기본적으로 트라우마에 대한 것을 시작으로 한 내용과

이를 겪는 본인과 주변 사람의 내면세계가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19금 내용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있어서 놀랐고,

작가가 여자인데 이렇게 남자의 심리를 잘 표현하는가 놀라기도 했다.

 

트라우마로 시작해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끝나는 책.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러한 삶 속에서 어찌 살아야 하는 것 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책을 보며 트라우마를 겪는 영혜씨든

몽고반점에 꽂혀 불륜을 저지른 형부든,

그런 남편과 동생을 둔 영혜씨 언니든.

모두 고독한 존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무리 아우성치고 발버둥쳐도 끝내 그 상처는

아무도 이해해줄 수 없는 것이란 것을 볼 수 있었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왜 몽고반점에 끌려 처제를 범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저 고독한 자신만의 내면세계인 것이었다.

 

영혜씨는 처음에 알 수 없는 트라우마로 인해 채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가족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채식주의자였다.

요즘 유행하는 채식주의자를 하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그런 게 결코 아니었다.

채식을하면 건강해지고 어쩌고 하는 그런 선택의 여지가 있는

무슨 주의자 따위가 아니라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트라우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채식인 것이지

그렇게 자유로운 선택은 아니란 거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가 떨쳐내야만 하는

트라우마에 무슨 신념 따위를 갖다 붙이고,

마치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지 다 이해했다는 듯이 고기를 강요한다.

이것이 영혜씨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픈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상처가 스스로 아물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했다.

치유는 결국 마지막엔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누구를 치유해주고자 함부로 덤벼서도 안되고,

나 좀 치유해달라고 조르는 것도 정도껏 해야하는 것이다.

 

상처야 잘 나아라 맛있는 거 사주고,

영혜씨에겐 건강한 채식이라도 권유하는 선에서 그쳤다면,

그렇게 자신의 팔을 긋고 거식증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느낀점 2

 

거식증에 걸려있는 동생을 찾아간 영혜씨의 언니.

영혜씨를 보며 그녀가 생각한 것이 인상적이다.

인생을 견뎌온 것이지 살아온 것은 아니다

 

견디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는 마치 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저 견디는 것과 파도를 역류해 올라가는 것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시간을 멈출 수 없고 그 흐르는 시간에 따라

뭔가가 자꾸만 파도처럼 밀려오게 된다.

그리고 보통 그 파도를 잘 견디는 것으로서 인생을 살아간다.

 

경제, 나이, , 인간관계 등.

보면 인생은 견뎌내야 하는 것 투성이다.

영혜씨의 언니도 그런 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결혼, 아이, 남편, 일 모두 강단 있게 견뎌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자신이 가장 힘든 삶을 산 것만 같다.

 

그냥 이렇게 보면 가장 비정상적인 것은

채식만 하던 영혜씨나 그런 영혜씨를 범한 형부같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의 행복도를 보면

영혜씨 언니가 가장 떨어져 보인다.

 

왜 그럴까. 일의 능률이 좋아 돈도 잘 벌고, 아이도 잘 키우고,

누가 봐도 유능해 보이는 사람인데 왜 가장 불행할까.

나는 그걸 편승한 삶이 보이는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 아이에 편승하고 남편에 편승하고 일에 편승한 삶.

그리고 그것이 책임감 있고 잘사는 삶이라고

말하는 사회와 가정 분위기.

 

말하고 싶은 거도 못 말하고, 해 보고 싶은 거도 못 해보고,

그저 삶을 견디는 것으로서 남들의 평범한 삶에 올라타

살아가는 것을 위안 삼으며 그런 걸 행복이라 생각한다.

 

편승한다는 것은 이렇게 얻어탄다는 뜻이다.

일상의 문제들은 세월의 파도를 타고

견디기 힘들어 밀려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견디기 수월해 치고 나가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병고에 시달리거나

재산이 탕진되어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견디다 못해 파도에 밀려갈 수도 있다.

 그래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야만 행복할 수 있다.

 

인내하는 것과 견디는 것은 결코 다른 문제라 생각한다.

 견딘다는 건 밀려온 파도에 일단 견디고 흘려보내는 것,

살아간다는 건 인내하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결실을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영혜씨의 언니는 그래서 불행한 듯 보인다.

잘 견디며 살아왔지만 하루하루를 견디고 흘려보내는 하루로 살았다.

 

그렇게 견디고 흘려보낸 하루하루 뒤에 자신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정신병 걸린 동생, 떼쓰는 아이, 남편. .

모두 편승 되어있는 것들 뿐이고 뭔가 자신이 이끌어갈 것은 없다.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수레바퀴에 편승해 살아가지 말고,

자신이 수레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왜냐면 남의 수레바퀴를 따라간다는 것은

결국 수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수레에 짓눌리게 될태니까.

 

그리고 영혜씨 언니를 보면 명료하게 잡히는 것이 없다.

일이냐 남편이냐 아이냐. 열심히 살긴 하는데 명료하진 않다.

아이도 원하고 일도 원하고 행복한 가정도 원하지만 진짜 명료하진 않다.

 

반면에 영혜씨는 명확히 채식을, 형부는 명확히 몽고반점을 원했다.

명료하니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이끌어가는 삶이다.

그러니 삶을 견디기만 하고 흘려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그건 명료하게 잡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인내 뒤에 늘 흘려보내기만 할 뿐 잡히는 것 없는

신기루 같은 삶, 그것이 견뎌가며 사는 삶이고,

흘려보내지 않고 명확히 잡히고 보이는 게 있는 삶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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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점 3

 

어쨌든 영혜씨와 영혜씨 형부는 비교적 행복해 보인다.

한 사람은 거식증 걸린 정신병자. 

한 사람은 처제의 몽고반점에 꽂혀서 불륜 저지른 사람.

이들이 과연 단순히 원하는 걸 마음껏 해서 행복한 걸까.

 

난 그들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도 단 한 번의 결심이 선 이후

그것을 집요하게 실행에 옮긴 이후의 변화이다.

 

영혜씨는 트라우마가 살아나면서 육류를 끊게 되었고,

이후 스스로 나무가 되어가는 환상까지 보게 되며

더이상 이생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영혜씨 형부는 몽고반점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후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그저 내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들 자신이 변했다고

느꼈다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보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보게 되었다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형부도 시비의 시선에서만 보면

그렇게 못된 놈도 없을 만큼 못된 놈이지만

변화를 보면 그게 그렇게 추악한 성적 욕망만은 아니었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그 결심이 그냥 흐지부지한 결심이 아니라,

철저히 지키겠다고 다짐한 결심이라는 점이다.

반드시 육식을 금하겠다. 반드시 몽고반점으로 작품을 만들겠다.

 

그리고 영혜씨는 손목에 칼을 그어서라도 그것을 지켰고,

형부는 아내와 이혼하게 될 것을 감안 하고라도

처제의 몽고반점으로 작품을 완성 시켰다.

 

이렇게 단 한 번의 결심이 사람을 바꾸어놓았다.

단지 고기를 안 먹겠다고 했을 뿐인데,

단지 몽고반점으로 작품을 만들겠다고 했을 뿐인데,

그 파장이 어마어마하다.

 

사람을 바꾸는 일이라는 게 이렇게

하나의 결심과 작은 변화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몽고반점이 뭐 그리 대단한 걸까 싶지만,

생각해 보면 궁금한 거 하나가 생겨야

거기에 알고자 하는 열정이 따라붙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몽고반점은 형부에겐 궁금함이었고,

그 궁금함이 열정과 하나의 큰 결심을 낳았다.

그리고 그 결심을 이룸으로써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이런 그가 처자식을 잃은 불행에만 빠져 살까.

아마 처자식보다 더 큰 것을 얻고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영혜씨 언니는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한다.

이것이 꿈이었으면, 만약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이러지 않았다면........그동안의 모든 선택 들을 되짚어본다.

 

이런 그녀 내면의 생각들을 내가 다시 정리해 보면 이렇다.

'그저 주어진 대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워 왔어야 했나.

그리고 그것들을 위해서만 그렇게 힘들게 일하며 살아왔어야만 했나.

 

그런 거 말고 나도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따라서

열정을 갖고 찾아가며 살아갔었다면 어땠을까...

세상에 궁금한 게 참 많은데 왜 그런 것들을 못 하고 살았을까.

뭔가 궁금한 거 하나를 해결해 보겠다는

작은 결심조차도 못해보고 살아온 것이 매우 개탄스럽다....'

 

궁금한 거는 원하는 것과 직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회적 시선에서 보면 분명 잘 살아가는 영혜씨의 언니,

그녀가 불행한 것은 명료하게 원하는 것 없이

방황하며 살아온 이유 때문 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채식주의자라는 책은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보편적으로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만 살아가는 가정사를 비웃고,

지극히 개인적인 궁금함이나 관심을 따라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바라보는 그런 세태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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