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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독후감

'앤서니 버지스' 시계 태엽 오렌지 줄거리 독후감 1부

by 생각하는 남자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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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독후감 1부

 

시계태엽오렌지
시계태엽오렌지

 

1부 줄거리

 

알렉스는 15. 

그는 패거리들과 어울려 다니며 온갖 비행은 다 저지른다.

 

마약성분이 섞인 우유를 먹는 밀크바에 드나들고,

길에 있는 노인을 구타했으며, 다른 패거리를 폭행했고,

부잣집을 약탈하는 것을 재미로 삼았다.

 

그러다 우연히 밀크바에서 어떤 여자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고,

그 노래에 야유를 보내는 일당 중 하나와 마찰을 일으킨다.

알렉스는 음악을 특히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결국 불만이 쌓인 일당들이 몰려와 알렉스에게 경고를 했고,

이에 굴하지 않기 위해 폭력으로 제압하는 알렉스.

하지만 일당들은 알렉스를 범죄현장에 들어가게 해 놓고,

경찰들에게 잡혀가도록 모략을 꾸몄다.

알렉스는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느낀점

 

1부의 내용은 대부분 범죄에 대한 내용이고,

알렉스의 성향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폭력, 약탈, 강간, 마약 거침이 없다.

 

하지만 그가 베토벤을 포함한

많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보통 이런 음악은

악보다는 선과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아한 사람들이나 듣는다고 생각하는 베토벤의 음악을

잘 때마져도 들으며 자는 알렉스가 그런 악행을

하고 다니는 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알렉스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성품을 좋게 만들기 위해

베토벤을 포함한 여러 가지 유명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에

매우 어처구니없는 처사라고 비웃는다.

 

왜냐면 자신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그런 음악을 들으며

더욱 폭력적이고 성적인 것들을 떠올리기에 좋기 때문이다.

 

베토벤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으르렁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전쟁이나 폭탄 같은 것들이

젊은이들을 악하게 만든다는 신문의 기사도

매우 어이없어하며 비웃는다.

 

왜냐면 자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선행이 좋아서 선행을 하는 사람들 마냥

자신은 악행이 좋아서 악행을 한다는 것이다.

 

즉 악행을 좋아하게 된 것은 음악 때문도 아니고,

전쟁 때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호불호라는 것이다.

악행을 정당화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는 된다.

 

나도 어려서 음악 꽤나 좋아했지만 그 음악들을 들으며

선해지거나 악해지거나 했기보다는 당시에 가지고 있던

어떤 로망 같은 것을 떠올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매체에 나오는 흔히 불온하다고 하는 것들을

보면서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걱정스러운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왜냐면 내 성향이 이미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타고난 성격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

알렉스와 같은 이런 성향을 가진 아이는 그대로 크게 되면

그러한 방향으로 계속 자라 그런 어른이 될 것이다.

 

흔히 꼴통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있다.

내 주변에도 그렇고 뉴스에도 많이 볼 수 있는 애들이다.

 

그런데 이 애들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궁금하면서도 처벌하기에만 급급하다.

 

이건 사실 관심 있는 듯 하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관심이 없으니 성격에 대한 파악 없이 처벌만을 외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관심을 좀 가져봤다. 

그들 비행의 원인은 무엇일까.

 

도올의 스톱 이라고 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어머니의 무한 사랑 외에도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버지로부터 질서와 권위에 대해서

배워야 할 시점에 그것이 결핍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알렉스에게 눈에 띄는 점은 자신의 서열을

남들 보다 항상 위에 두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여기 패거리 4명중에 알렉스가 가장 어리다. 

그래서 꼬마 알렉스라는 별명도 있다.

 

그러니 이 알렉스가 계속하여

대장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어찌 보면

아버지에게 건강하게 배웠어야 할

질서의식과 권위에 대한 교육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건강한 질서이고 권위인지에 대해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마주하는 사회.

 

그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교육이 부재된 동물적인 감각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동물적인 서열의

맛을 찾게 된 것이라 생각 할 수 있다.

 

뭘 좋아하는 지에는 관심 없는 어른들.

거기에 어른들이 보여주는 질서와 권위라고는

수평이 아닌 수직적인 것들뿐이니

청소년들의 세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곤

폭력에 의한 것들이 아니겠나.

 

그것이 질서의식의 왜곡으로 폭력과 약탈로 나타나는 것이며,

권위의식의 왜곡으로 강간과 마약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권위와 질서란

오직 수직적인 것으로만 정립되었을 것이다.

 

알렉스와 같은 청소년 시기에는

사회경험이 적어 이런 질서의식과 권위의식이

제대로 자리 잡히지 못하면 비행으로 이어지기 쉽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지

도통 이해가기가 어려울 수 있다.

 

알렉스의 말처럼 그들의 악행을 음악 때문이니 전쟁 때문이니 하는

어쭙잖은 이유로 꼬투리 잡을 게 아니라

그들에게 결핍된 질서의식과

권위의식에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역할인 무한 사랑에 아버지의 역할인 올바른 질서의식.

이 두 가지가 잘 교육되어야만 비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 생각 해 보더라도 비행의 시선은

청소년이 아닌 어른들에게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2부 줄거리

 

교도소에 간 알렉스. 

그곳에서 편하게 지내고 빨리 나가기위해 모범적이게 행동한다.

신부의 근처에서 보조 역할을 하며 신부의 마음도 사게 된다.

그러다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는 루드비코 요법에 대해 듣는다.

이것은 범죄자들을 갱생시키는 신 개념 프로젝트라 한다.

 

신부는 말렸지만 이 요법에 잘 적응하면 

2주 안에 교도소를 나갈 수 있다는 것에

혹한 알렉스는 적극적으로 내무부장관에게

어필하였고 결국 참여하기로 되었다.

 

실험실로 옮겨진 알렉스가 그 후 겪게 되는 일은

어떠한 약물 투여 후 계속하여 잔인한 장면과

성적인 장면을 강제 관람시키는 것이다.

 

알렉스는 점점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났고,

차마 견딜 수 없는 지옥과 같은 맛을 경험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실험을 통과했고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됐다.

 

느낀점

 

루드비코 요법은 일종의 세뇌교육같이 느껴진다.

알렉스는 이제 속에서 폭력적인 느낌이나 성적인 느낌이 올라오면

바로 구토증상이 올라와 더 이상 그 짓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세뇌 당할 때 흘러나온 베토벤 음악 때문에

이제 음악을 들어도 구토증상이 올라오게 되니

이것은 세뇌 되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주기적으로 폰의 벨소리를 바꾼다.

이건 취향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벨소리에 세뇌 되어서 그렇다.

 

전화가 울릴 때 마다 진상손님의 연락이 오면 그게 세뇌 되어서

벨소리만 울려도 깜짝 깜짝 놀라기 때문이다.

 

처음엔 좋아했던 노래인데

이젠 그 노래가 어디에서 들려도 놀라게 된다.

그래서 바꾸지 않고는 더 이상 못 버틸 만큼이 되면 노래를 바꾼다.

 

알렉스는 구토를 할 정도였으니

그 세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본다.

 

세뇌는 명확히 말하면 영어로 brainwashing 이다.

뇌를 씻는다고 할 수 있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싹 씻어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개조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건 좀 기계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사상주입 같은 식으로 어떤 이익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개인들의 머릿속에 뭔가를 집어넣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알렉스는 처음엔 빨리 교도소에서 나갈 수 있으니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루드비코 요법에 참여했다고 생각했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세뇌된 것이다.

 

이런 게 책에서는 루드비코 요법이라 하여 한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적혀졌을 뿐이지 사실은 국가를 포함한

많은 이익단체들은 개인들을 세뇌시키기에 열중이다.

 

알렉스가 세뇌되는 과정을 영화로 한번 보면 모두 놀랄 것이다.

그리고 이 세뇌가 곧 폭력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폭력을 못하게 하기 위해 폭력을 가하고 있다.

 

꼭 무력을 행사해야만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이지만,

이런 이념의 주입도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하면 댓글조작도 폭력이고 가짜뉴스도 폭력이다.

 

그리고 이익단체들에 편승한 언론의 편파 보도도

그 영향력을 생각 해 본다면

국민을 향한 어마어마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여기 저기

얻어터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가짜뉴스와 댓글들의 폭력에

눈 크게 뜨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일은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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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기에서 루드비코에 반대하던 신부의 말이 이렇다.

선택 할 수 없을 때는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는 거야

착해지는 것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자유 의지가 없을 땐 인간이 아니라 하는 것 같다.

물론 동물들도 선택이란 걸 하겠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본능이 아닌 이성적 선택일 것이다.

 

그 이성이 비록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하더라도 일단 인간이라면

이성이 있다는 것이 차별화된 점이라 할 수 있으니

이성의 작용을 막는다는 건 결국 동물이라는 뜻 아닌가.

 

사람이 짐승 같다고 할 때는 보통 비이성적일 때가 많은데,

사실 이런 식이면 악행이라도 본인이 선택해서 했을 땐

이성적인 행위이니 인간다운 행위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면 아무리 이성적이려고 해도

어리석음이라는 측면이 있어서

결국 악행을 택하는 면이 있게 되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근본적으로는

선택의 능력을 상실케 하는 것이 해법이 아니라

자꾸만 악행을 하게끔 되는

어리석음을 해결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니 루드비코 요법은

어리석음을 밝게 해주는 방법이 아닌

악행을 차단하는 식의 방법이라

그 대상은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이다.

결국 알렉스는 정부의 희생양이자 짐승취급된 것이다.

 

시계태엽오렌지 라는 것은 성장할 수 있는 인간에게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으로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선택을 못하도록 자유의지를 없앤다는 것은

성장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결국

자유의지를 갖고 선택 해 나가야만이

인간이 성장하는 것이라는 뜻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어리석음의 문제가 있어서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는 있어도

어쨌든 성장하려면 선택이 필수이다.

 

그럼에도 악한 쪽으로 흐를까 두려워

그 선택을 제한한다는 것은 정부가 이미

인간을 성장하는 존재로 보기 보다는

흔한 말로 개돼지로 본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작가는 동물농장을 쓴 조지오웰

굉장히 좋아했고 영감도 얻었다한다.

 

동물농장에 나오는 개돼지들이

어떤 캐릭터인가 생각해보면,

성장보다는 길들여지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택이란 이미 없다.

 

왜 그토록 자유의지와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국가나 그밖에 환경에

길들여지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인간의 특권이라면

성장하는 것도 인간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는 선에 대해 말하기보단 악에 대해 말하기 바쁘다.

뉴스기사도 정치도 모두 무엇이 나쁘다는 얘기는 많이 하지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선뜻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건 악은 제시하지만 선은 제시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다정하지 못하게 한다.

정치권에서 바라는 것이 국민의 성장일리 없다.

 

알렉스가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악을 차단하기위해 하는 일이란 게

고작 루드비코요법 같은 것이다.

 

인간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뒤로하고 짐승 한 마리 추가한다.

 

과연 인간은 교화될 수 있을까.

교화란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부처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쳐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함 이다.

 

저 말은 교화가 절대 악한 마음을

통제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착한 마음을 갖지 않던 사람이

착한 마음을 갖게 되는 일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성장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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