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독후감 2
3부 줄거리
교도소에서 나온 알렉스.
집에 돌아와보니 이미 그의 자리는 없고
그가 어떤지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마음껏 폭력을 행사한다.
그에게 당했던 노인들,
옛 일당들 모두 그에게 복수한다.
방황하다 우연히 들른 집은
일전에 그가 나쁜 짓을 했던 작가의 집.
작가는 자신을 못 알아봐서 다행이지만,
알렉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한다.
현 정치권의 희생양이라 판단하여
잘해주지만 반대파인 작가는
알렉스를 희생양으로 하여
정권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다.
결국 알렉스를 가둬놓고
베토벤의 음악을 틀어
그 스스로 자살하게 만든다.
하지만 창문으로 뛰어내린
알렉스는 목숨을 건졌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내무부 장관은
알렉스를 찾아와 다시 회유한다.
좋은 직업과 돈 그리고 몸 상태를
예전으로 돌려 줄 태니
좋게 말해달라는 것이다.
알렉스는 그렇게 했다.
직업도 생겼고 돈도 생겼고
다시 폭력과 섹스를 즐기게 되었다.
마약 섞인 우유도 여전히 즐겼고,
다른 집을 터는 일도 여전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일들이
조금씩 이상하게 느껴졌다.
옛 일당 중 하나를 만나게 되었을 땐
더욱 이상한 변화를 느꼈다.
신문에서 잘라낸 아이의
사진을 보고도 변화를 느꼈다.
어른스러워진 옛 친구의 모습에 놀라고
자신의 모습을 본 알렉스.
그 이상한 변화는 자신이
철들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예전에 즐기던 유흥들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알렉스의 나이는 18세였다.
느낀점
어쨌든 루드비코 요법의
첫 실험자인 알렉스는 부작용이 많았다.
그건 위에 나온 말대로 착해지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다는 것과 상통한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게
착한 행동이 아니니 괴롭고,
좋아하는 악행을 행하려할
때 마다 구역질이 나니 괴롭다.
이걸 선과 악의 입장에서 보지 말고
호오의 관점에서만 보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일은
정말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알렉스가 자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결국 무기력함 때문이다.
그가 선택하려는 게 악한 행동이니
잘못된 게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악행도 어쨌든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고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 인간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언제 내가 무기력함을 경험했나 생각 해 보아도
내 능력 때문이든 외부적 요인 때문이든
선택의 폭이 좁아지거나
선택할 수 없음을 알았을 때이다.
그리고 그건 선악의 문제 보다는
호오의 문제일 때가 많다.
계란을 먹고 싶은데
계란 파동 때문에 못 먹든,
집을 사고 싶은데
비싼 집값 때문에 못 사든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무기력하지 않고 활력 있는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갖고 좋아하는 선택들을
풍부하게 하는 사람들일 태니
내 의지대로 뭔가를 해나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악행을 거리낌 없이 즐기는 사람들이
선뜻 이해가 안갈 수 있지만
그게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자기 의지대로 뭔가 계속
해나가는 즐거움에
푹 젖어 사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알렉스는 착한 사람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쁜 짓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만,
괴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
거기에 하고 싶은 거 못하는
개인적 괴로움 외의 또 하나 부작용은
바로 이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잔인한 사람들이다.
교화 된 것이 아니라 왕따가 되었고,
이미 인간이 아닌 짐승이
되었기 때문에 짐승취급이 된다.
차라리 범죄자였다면
그 범죄자에 속하는 무리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제
범죄자조차도 못된 짐승일 뿐이다.
돌연변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돌연변이는 그저 실험대상일뿐이고
범죄자보다 살아가기 힘든 게
이런 변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악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건 이런 부분이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변종을 알아본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는데
기가 막힌 능력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할지도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특이한 사람이 오히려
악한 사람보다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말 몇 마디 나눠보면
만만한 사람 금방 알아채게 되고
그 만만함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도 금방 알아채며
어느새 자신이 그 사람보다
우위에 있음을 누리게 된다.
그때 배워오지 않았던
수평적 인간관계보다는
수직적 인간관계와 질서를
먼저 떠올리게 되고
결국 갑질 내지는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쨌든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무기력함과도
연결이 되는 걸 볼 수 있다.
나쁜 짓을 했을 그때도
알렉스는 무기력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기력을 찾은 알렉스가
이젠 좋아했던 폭력과 섹스를 상상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느끼곤
얼굴에 그렇게 생기가 가득 찰 수 없으니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던 걸까.
이 실험이 실패라는
결정적인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알렉스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 의사로 택한 것이 아니라
제아무리 선한일이라도 변할 순 없었다.
수동적인 법이나 규율만으론
절대 사람이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요되는 선은
선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매우 괴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선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악행을 할 때 괴로운 만큼
악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선행을 할 때도 괴로울 것이고
그 체감지수는 같을 수 있다.
세상은 어쩔 수 없나보다.
선행을 좋아하는 사람의 수만큼
악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
알렉스의 마지막은 매우 신선하다.
그에게 일어난 변화가 대체 무엇인가.
그렇게 말리고 말려도
멈추지 않던 비행을 스스로 끊는다.
이유는 별거 없다. 우선 나이가 찼고,
그에 맞는 꿈이 생긴 것이다.
루드비코 요법과 알렉스를 통해서만 보면
악행에 대한 두려움만으론 선해질 수 없다.
결국 좋아할만한 다른 일이 생겨야하고
그것이 선한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알렉스가 자신의 청춘을 돌아 보건데,
그것은 아무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이 낳을 아들도
자신이 어찌 할 수 없을 것이라 한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인데,
마치 시계태엽을 감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형 같아서
이리박고 저리박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게
청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앞서 청소년 비행문제를
생각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비행문제에 대해 생각 한 바는
가정에서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부재로 인해 생긴
왜곡된 질서의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버지스는 이것을
그저 한때의 방황이라고 생각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것에 편승해
그저 그럴 때가 있는 것이고
그 시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철이 든다는 식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결말에 대해
조금은 아쉬운 점을 감출 수가 없다.
청소년기에 가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안다면
그저 시간이 지나면
그 시기는 사라진다는 식의
해석은 좀 아닌 것 같다.
나는 알렉스가 철 들었다고 생각한 이유를
자신의 나이에 걸 맞는 역할을
찾은 것 때문이라 보았다.
아이 사진을 보고, 자신보다 두 살 많은
어른스러운 친구를 보고 느낀 것은
자신도 이제 자신의 나이게 걸 맞는 역할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이었을 때는
사회적 위치로 보나 뭘로 보나
딱히 책임질만한 것은 없었고
역할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성인이 된 18세이니
그에 걸 맞는 뭔가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걸 철 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철 드는 것은
나이에 숫자하나 더 붙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알렉스가 아빠가 되든 남편이 되든
그건 관심분야가 바뀌었을 뿐
의식의 성장이나 인간으로서의
성장은 아닌 듯 하다.
자신의 아들도 자신처럼 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아버지로서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교육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수평적 질서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나이가 든다 하더라도
선행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알렉스가 아빠가 되어도
결혼을 해도 이것은 변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면 수직적 질서를
고스란히 갖고 사회에 나간 어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수평적 시선을 갖추기 전엔
선행이란 걸 기대하기가 힘들다.
*
시계태엽 오렌지는
기계화된 인간을 뜻한다고 한다.
과일은 제각기 그 크기가 다르게 자라는데,
그 과일을 틀에 맞게끔
태엽을 감아 키우는
그런 기계적인 성장이다.
왜 알렉스와 같은 인물이 나오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선근이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같은 것을
적용해 가르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천성적으로 선행을 좋아해 별다른 지도 없이도
선하게 자라나는 사람을 선하다 생각하는 반면에,
천성적으로 악행을 좋아해
특별한 지도가 필요한 사람에겐
법과 윤리의 잣대만을 들이대며
악하다는 것을 강조하기에만 바쁘다.
국가의 측면에서든 각 가정의 측면에서든
선한 행위를 많이 하는 사람을
양성하고 싶다면,
알아서 선한 행을 하는 선인에게
관심을 보일 게 아니라
놔두면 알아서 악행을 할
악인에게 관심을 보여야하는 것이다.
책에는 솔직한 자만이
악을 행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건 그만큼 인간이 천성적으로
악하다는 얘기라 생각한다.
다만 솔직하면 솔직한 만큼
악행을 드러내는 것이고,
안 그런 사람은 나중에
서서히 들어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비행을 저지르는
청년들을 어찌 바라볼 것인가.
비행을 정당화 하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글러먹은 놈, 나쁜 놈 보다는
솔직한 놈들로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알렉스는 그렇게 삐딱하면서도
솔직해서 어른들 눈 밖에 난
구제받지 못한 젊은이 인 듯하다.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악한 선택에 대한 지적과
금기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선한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청춘을 보호하고 인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다.
알렉스가 마지막에 철 들었다고 생각하며
그동안의 비행을 그만두고
아들을 낳기 위해 여자를 찾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선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악행을
그만두게 하는 정도인 것이다.
자유의지와 선택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전에 하던 비행이나
결혼이나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둘 다 그저 원해서 택한 것이다.
다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게 바뀌어갔을 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것이
악한 방향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러니 1940년부터 1960년대 사이
혼란한 시기에 교육적 부재 속에서
이정도 선택을 한 것은 기특한 일이다.
그러니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금기와 질타가 아니라
선한 길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올 때 까지
인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인간이라면 그 마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악을 나쁘다하여 선택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책에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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