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하는 독후감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독후감

by 생각하는 남자 2022. 11. 18.
반응형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줄거리

 

구두수선장이 시몬. 흔한 말로 찢어지게 가난하다.

추운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몇 년 만에 겉옷을 사러 갔지만

결국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그냥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 교회 옆에 벌거벗은 청년을 발견한다.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자신의 구두와 겉옷을 벗어 주고는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에게 온갖 꾸지람을 듣지만

신의 사랑을 얘기하는 남편의 회유에 이내 수그러들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눠주며 저녁을 함께한다.

청년은 그때 한번 미소를 짓는다.

 

그 후 시몬은 이름이 미카엘인 그 청년에게

구두 수선을 가르쳐 함께 일을 해 나간다.

제법 능숙하게 배워 유명한 구두수선집이 되어간다.

 

6년 정도 흐른 후 어느 부유한 남자가 와서는

1년 정도 신을 장화를 만들어 달라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미카엘은 그 비싼 가죽으로 실내화를 만들어버린다.

 

시몬은 그를 나무랐지만 그때 부유한 남자의 하인이 들어와서는

남자가 죽었다하며 시체에 신길 실내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도 미카엘은 한번 미소를 짓는다.

 

다시 얼마 후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어느 여자가 찾아온다.

한 아이는 절름발이. 이 아이들의 신발을 만들길 청한다.

사연을 들어보니 쌍둥이의 아버지는 나무에 깔려죽고

어머니는 이 아이들을 낳다 죽었다고 한다.

 

이 쌍둥이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며 매우 행복하고

신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는 여성을 보며

미카엘은 또 한 번 미소를 짓는다.

 

이후 미카엘은 온몸에서 빛을 내며 천사가 되었다.

신께서 자신에게 내린 벌을 모두 끝냈다고 한다.

그 벌은 인간이 되어서 세 가지를 알아오라는 벌이었다.

 

첫째, 사람의 마음엔 무엇이 있는가.

둘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셋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연인 즉, 미카엘은 신의 심부름으로 어느 여성의 영혼을 데리러 내려갔었다.

그 여성은 남편도 나무에 깔려죽고 자신까지 죽으면

쌍둥이 아이는 살수가 없다고 했고 미카엘은 결국 신께로 데려가지 못했다.

이에 대한 벌로 신은 저 세 가지를 알아오라고 인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인간세계에 알몸으로 떨어져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시몬을 만났고,

그의 아내가 완강히 거부했을 땐 그녀 뒤에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으나

남편의 회유에 다시 빵을 내왔을 때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는 것

보았고 그때 죽음의 그림자가 물러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두 번째로 부유한 사내가 왔을 때 죽음의 그림자가 보였는데

그가 1년을 신을 장화를 주문하자 사람에겐

정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쌍둥이를 키운 여자를 보고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신의 벌로 주어진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반응형

 

 

내 생각

 

처음엔 좀 얼떨떨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의 뜻이라는 단어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하며 살지어다 하는 그런 내용인건가.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본다.

왜 신은 미카엘을 인간세상으로 떨어뜨린 것일까.

 

불쌍한 쌍둥이 엄마를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돌아왔을 뿐인데 왜 그런 벌을 내리신걸까.

 

나는 마지막 세 번째 깨달음에서 그 답을 구한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그 쌍둥이 아이를 두고 미카엘이 그냥 왔던 이유는

쌍둥이가 어머니가 없으면 살 수가 없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신이 보기에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인간으로 몇 년을 살면서

천천히 하나하나 알아가는 미카엘이다.

 

인간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인간은 한치 앞도 모르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모른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결정타가 있는 것이다.

부모가 없으면 못 살줄 알았던 쌍둥이들이

어느 이름 모를 여성에 의해 키워지고 있는 것이다.

 

아!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구나.

부모가 아닌 그 무엇도 아닌 사랑.

부모가 키우는 게 아니라 사랑이 키우는 것이구나.

 

미카엘은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몰랐고,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사랑이란 게 사람을 살게 한다는 것을 몰랐다.

 

흔히 사람이 사람을 살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이 날 키웠고,

가까운 사람들이 도와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날 키웠나?

아니다 부모님은 껍데기 일 뿐이다.

부모님의 사랑이 날 키운 것이다.

 

보통 눈으로 보기엔 사람이 사람을 돕고 살아간다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론 사람이 살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살게 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는 부모들이

아이를 어떻게 살게 하는지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다면

내가 돕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론 내 자비심이 돕게 하는 것 뿐 이다.

 

내 안에 자비심이 없었다면 당연히 돕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모든 일이든 내가 하는 것만 같지만

내 안의 성품들이 하는 일이다.

 

사랑도 자비도 결코 내가하는 것이 아니다.

악행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악한 마음이 하는 것이다.

내 육신은 그저 도울 뿐이다.

 

여기 나오는 쌍둥이의 친부모에게도

키운 부모에게도 사랑이란 것은 있다.

그 사랑이 쌍둥이를 키운 것이지 부모라는 껍데기가 키운 게 아니다.

 

신은 그것을 미카엘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에겐 사랑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을 너무 괄시했다는 것.

사람의 미래는 어찌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함부로 확신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성품이라는 것.

그렇게 미카엘의 고정관념을 깨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사랑이란 것을 부모에게만 한정시켰던 미카엘에게

이웃에게도 사랑이 있으니 부모만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람이 그저 부모가 젖만 먹이면 크고 사람이 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심성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라는 것이고

그 심성이 사람을 어찌 살게 하는 지를 보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