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독후감 1부
줄거리
책 주인공은 ‘요조’ 이다.
서문에는 이 요조를 세장의 사진으로 본 느낌을
전하고 있으며 그 다음은 요조의 수기로 이루어진다.
저자의 소개를 보고나서 책을 보니
이는 다분히 자서전 적이다.
책의 내용도 심정도 모두 세밀하게 기입되어있어서
이런 건 상상력만으론 쓸 수 없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책의 중반까지 읽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부유한 집 아들인 요조는
어려서부터 인간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의지에 의해 실용적으로 돌아가는 세상,
앞에선 칭찬하고 뒤에선 욕하는 인간들에 대한 불신,
인간의 노여움이란 것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이런 인격이 형성되었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인간들 속에서 성장해가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편은 ‘익살’이다.
자신의 두려움은 일단 감춰두고
사람들 앞에선 익살을 떤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여자들도 많이 꼬이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요조는 특히 남자보다 여자를 경멸한다.
종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측이 가능해야 계속 익살을 떨고 대처 할 텐데
여자들은 이랬다저랬다 종잡을 수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성장하며 결국
초 중 고를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안은 체
다니게 되었고 화방에서 친구를 하나 만나
술, 담배, 창녀를 알아간다.
이 것들은 잠시라도 그에게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
특히 창녀에게서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여타의 사람과 비교했을 때
강요나 실용적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녀들도 요조를 좋아했고 요조는
어느새 여자에 능통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요조는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가
상당수 있었지만 그 모든 여자들을 경멸한다.
겉으로만 익살을 부릴 뿐이었는데
여자들은 좋다고 하는 것이 우습다.
그 와중에 카페 직원을 만나
깊은 얘기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쓸쓸함에 공감을 하며 지내다
돈이 떨어진 어느 날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여자만 죽고 살아남은 요조는
자살방조죄로 잡혀가고 그 안에서
이런 저런 취조를 받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역시 특유의 익살이 계속된다.
내 생각
글은 매우 흡입력이 있게 쓰여 있고
읽어나가는 것도 재밌다.
이유는 역시 본인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세밀한 감정선을 읽어가는 재미가 있다.
너무 극단적으로 인간에 대해 두려워하는 경우라서
깊이 공감하기는 힘들지만
공감의 요소요소는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을 두려워하는구나싶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익살’ 이었다.
왜 인간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생존의 법칙으로 익살을 택했을까.
그것도 어린 나이에 본능적으로 말이다.
이는 다분히 사람들이
자신을 어찌 바라보는 지에 치중한 것 같다.
내 속은 그들을 두려워하고 경멸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익살을 떨어야 미움을 사진 않는 것이다.
그냥 두려움 그 자체이다.
요조에게 있어 사람은
사랑하거나 함께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옥죄여오는 흡사 괴물들처럼 보인다.
그 살려달라고 외치는 듯 한 억지웃음과 익살이
가슴속에선 두려움으로 살아남아
밤마다 악몽을 꾸었고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을 것이다.
요조는 사람들의 속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겉으로는 웃고 뒤에선 욕하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도
이제는 속인다는 생각까지 못 할 정도가
돼버린 그런 것이다.
지금에서야 원래 인간이 그렇고
세상살이가 원래 그래 하지만
나도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오면서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익살’을 떨진 못했다.
그것은 가식이고 비굴한 것이고
자존심 상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은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마치 화가 나서 뚱해있는 것 같은 그런 표정으로
그런 사람들을 대했고
사람들도 대번에 나의 표정에서
내가 자신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갔다.
그래도 부모님은 항상 익살을 강요했다.
그래야 한다는 것을 늘 강요했지만
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덧 익살을 택하며 살고 있다.
어느덧 익살에 대한 비굴함이나
자존심상하는 것은 뒤로하게 되고
속은 어쨌든 간에 사람들 앞에선
웃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게 되었다.
이걸 납득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익살이라는 것을 납득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가 싶었다.
누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에선 웃고
뒤에선 욕하고 하는데
나는 그리고 요조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
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런데 책의 한 문구에서 공감을 하게 된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요조는 인간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고
나도 겁쟁이구나.
그랬구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는 게 두려웠구나.
그런 경멸스러운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나중에 나에게 상처가 될 까봐 겁이 났던 것이구나.
요조가 왜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 치듯이 익살을 떨었는가.
그 깊은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구나.
그에 대한 저항을 익살로 하는 것이었겠구나.
그리고 그 저항에 지쳐갈 때 쯤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을 만나
동반자살을 시도하게 된 것이구나.
세상에는 아직도 요조와 같은
사람들이 넘쳐나겠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의 자격을 갖춘 많은 사람들이
늘 천연덕스럽게 그렇게 가면을 쓰고 살며
웃고 욕하고 하는 사이에
그것에 적응하지 못해 인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상당 수 있겠구나.
내 생각 2
요조가 이렇게 부적응적인 면을 보이게 된 것은
세심한 성격 탓도 있지만
다분히 가족의 영향이 커 보인다.
아버지가 재력가이면서도 가부장적이라 그런지
요조는 늘 자신을 숨기는 것에
능숙해져 있었다고 본다.
늘 자신을 감추기 바쁜 아이가
성장하는 게 어떤지도 보인다.
내가 지금 괴로운 게 뭐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아가며 자라온 요조라는 인물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사람대하는 것이 두렵고
증오스러우니 친절할 수가 없다.
요조의 표현대로 인간이 욕과 색이라는 두 가지로만
이뤄진 존재라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도 있을 수 있고
겉과 속이 다른 존재라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충분히 두려워 할 만한 것이고
그러다보면 증오와 경멸이 따른다.
다만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증오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중요하게 보인다.
정치인들이 증오스럽다면
뭔가 그들에게 두려운 면이 있을 것이고
개가 증오스럽다면 뭔가 개들에게 두려운 면이 있을 것이며
직장 상사가 증오스럽다면
뭔가 그에게 두려운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계속 갖고 있는 상태로
증오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무모한 짓이다.
그 두려움부터 깨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호연지기를 길렀어야하는 것인데
요조는 원하는 것을 말하고 두려움 없이
실행 할 수 있는 그 토대를 아버지가 사전차단 한 것이
부적응의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 3
요조는 당시 사회주의 사상이
유행이어서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친구의 소개로 비합법적 단체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창녀들에게 느꼈던 편안함처럼
그곳에서도 편안함을 느낀다.
이게 어떤 느낌인지 공감이 된다.
요조는 여기에서 다정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다분히 심적인 편안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비합법 단체에 대한 선입견이나
창녀들에 대한 선입견 같이 이런 저런 외부적인 시비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다정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나도 내가 다정한 마음을 느끼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무슨 직업인지
어떤 성격인지 뭐 그런걸 보는 게 아니다.
그런 이유 불문하고 그저 편하고 잘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의 부족함이 그 사람에게도 있는 듯 하고
그러다보면 그 사람이 마치 나인 듯 하고
뭐 그런 마음이 들면서부터 다정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다정함을 갖추기란
그렇게 큰 노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 것을,
이렇게 한순간에 느낄 수 있는
좋은 마음인 것이란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서 사람들을 가리고 판단하며
어떤 사람은 따갑게 대하고
어떤 사람은 다정하게 대한다.
상대가 이러면 저러면 다정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요조의 경우로 보자면 상대의 상태는 매우 주관적이다.
비합법 단체나 창녀에게 다정한 마음이 드니 말이다.
이 주관적인 마음에 꽉 잡혀있는 게 인간이니
모두에게 다정할 수 없고 모두에게 자비로울 수 없다.
결국 사람을 다정하게 대할 수 있는 열쇠는
얼마나 상대를 나와 같은
모지리로 생각 할 수 있느냐 아닐까.
실상은 다 같은 모지리이지만
서로가 아니라며 가르는 것일 뿐이고
그로인해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내 생각 4
요조는 일종의 ‘일부러 하는 행동’ 이
들키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한번은 일부러 익살부리는 것을
친구에게 들키는 바람에 이것이 죽을 만큼 싫어서
그 친구에게 아부를 떨었으며
한번은 형무소 검사에게 이를 들켜서
역시 죽고 싶을 만큼 싫었다.
일부러하는 행동은 들켰을 때
민망함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게 죽을 만큼 싫었다는 것을 보면
요조에게 익살이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그저 살기위해
먹고 먹기 위해 돈을 벌고 하는
그런 게 진정 인간의 삶의 전부라면 어떨지 매우 괴로워한다.
보통의 인간들이 그에겐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살기위해 하는 행동이 즐겁지 아니하고
그저 살기위한 행위로만 치부되었을 때
다가오는 두려움이 분명 있다.
방향성이 없는 인간의 삶은
무수히 많은 난관에 부딪히며
늘 ‘왜’ 라는 것을 맞닥뜨리게 된다.
막 할 때는 잘 모르다가 갑자기
내가 왜 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덧 왜 사는 지도 생각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해
왜 살아야하는 지에서 방향을 잃은
요조를 보며 이 시대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갈등이 많았다는 것을 본다.
삶의 방향을 먹고사는 문제로
잡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고민과 두려움.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두려움이라는 것에서 인간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하는 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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