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독후감
줄거리
주인공 이름은 ‘뫼르소’이다.
어느 날 요양원에 계시던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는 장례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힘든 와중에 장례식이 끝나고
주말이 되어 여자 친구 마리와 함께하게 되고
바다에서 함께 놀다 그날 밤 정사를 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 같은 건물에 사는
‘레몽’ 이라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
그는 여자를 등쳐먹고 산다는 소문의 남자이다.
뫼르소는 그 레몽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친해지기도 하고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모른 척 해달라는 말에 부탁도 들어주고
경찰이 물어봤을 때도 유리한 증언을 해준다.
급속도로 친해진 둘.
어느 날 레몽이 해변근처 자신의 친구 집으로
마리와 뫼르소를 초대를 한다.
역시 별다른 거부 없이 초대에 응하고 그날이 되었다.
그런데 아랍인 몇 명이 그들을 미행한다.
아랍인 중 한명은 레몽이 폭행한 여자의 오빠이다.
미행을 따돌린 끝에 숙소에 도착해
레몽의 친구들과 뫼르소 일행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해변에서 아랍인들을 마주치고
이내 난투극이 벌어진다.
레몽은 칼에 상처를 입어
병원에 다녀오고 아랍인들은 도망갔다.
그리고 집에 있던 게 답답했던 뫼르소는
레몽이 준비해서 맡겨놨던 권총을 들고
더위를 피해 해변의 샘물 쪽으로
가기위해 홀로 길을 나선다.
찌는듯한 더위에 겨우 겨우 샘물가에 다가왔을 때
그곳엔 아랍인 중 한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뫼르소는 그와 대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그저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아랍인은 계속하여
자리를 막아서고 있었고
그가 꺼내든 칼자루에 비친 햇빛에
눈이 부셨으며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총을 쏴 아랍인을 죽이고 만다.
그 후 형무소에 가게 된 뫼르소는
변호사의 변호와 이런 저런 재판을 겪었지만
결국 사형이라는 판결을 받는다.
내 생각
이방인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단어들은 대략 이렇다.
거짓말, 부조리, 개입, 의미부여, 도덕률.
일단 뫼르소는 그냥 보기에
별다른 욕심도 야망도 없는
그냥 순간 순간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태양이 뜨거우면 피하고,
담배가 피고 싶으면 피고,
피곤하면 자고, 뭐 그냥 그렇게 모든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삶인듯하다.
심지어 마리가 결혼하자고 하니 그러자 했고,
반대로 다른 여자가 결혼하자고 해도
그러겠다고 한다.
내가 보통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뫼르소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남들처럼 살고 싶어도
그렇게 살수가 없다는 게 중요하다.
그게 스토리 전반적으로 계속 나온다.
어머니 장례식에도 눈물이 안 나온다.
그건 그냥 죽음이 큰 의미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태였고,
양로원에 모신 것에 대해 큰 죄의식이 없는 이유도
형편도 안됐을 뿐더러 집에 계셨어도
적적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례식에서도 슬픔이나 죄의식보단
그저 피곤하니 잤고 안 슬퍼서 안 울었고
담배가 당겨서 담배를 폈고 그랬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자꾸만 뫼르소의 인생에 개입한다.
마리가 결혼하자니 해서 마리가 개입되고
그냥 이웃일 뿐이지만 친구가 되자 하며
레몽이 개입하여 그리 되었다.
그리고 그 레몽에 엮여 이번엔 아랍인이 개입됐다.
그 결과 아랍인을 죽이는 결과까지 벌어졌고
그 사건 이후는 뫼르소에겐 완전 다른 삶이 되었다.
*
뫼르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본다.
그냥 난 인생에 별 의미를 두고 살지 않으니까
적당히 돈 벌고 적당히 먹고 살만큼 되니까
나 좀 그냥 살게 놔주면 안 될까.
난는 평소에 피던 담배 피웠고,
평소 하던 대로 졸려서 잤고,
마리가 사랑스러워서 동침했는데 그게 뭐 어쨌다고
법정에선 살인죄와 자꾸 연관시키는 건가.
엄마를 양로원에 모신 것은
모시자니 외로울 듯 하고 안모시자니
나쁜 놈 소리 들을 것 같은
부조리 속에 내린 결정이거늘
대신 모셔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나.
내가 꼭 내 삶을 당신들이
생각하는 의미에 맞춰줘야 하는 건가.
하나님 믿지 않고 속죄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형량이 가중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대체 뭔가.
재판에 선 뫼르소에게 어머니를 사랑했냐는 둥
슬펐냐는 둥 질문을 반복하던 변호사.
그게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는 문제인가.
이는 살인과 도덕률을 함께 묶어버리는 현상이다.
도덕적인 사람은 살인을 안 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살인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뫼르소의 진짜 살인 동기는
단순히 자신을 위협하는
태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함 이었는데
오직 살인이 비도덕적인 이유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죄 지은 건 뫼르소 자신인데
왜 판사가 흥분해서 반성하라는 둥 뉘우치라는 둥
답답해하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사람 다 똑같아야 한다는 것인가.
뫼르소와 그를 판단하는 사람들을 비교해보면
뫼르소는 현실에 주어진 것들
하나하나를 향유하는 사람이고
그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은 신이나 도덕률 같은
이상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상적이지도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것에 집중해서 사는 뫼르소가 답답한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뫼르소에겐
그들의 말이 뜬구름 잡는 소리다.
내게 지금 주어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는 사람에게
보이지도 않는 이상을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고 그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상처가 되는 것이다.
*
이제 일단 뫼르소 편드는 것을 잠시 멈추고,
실존주의와 부조리의 관점에서 이방인을 봐야한다.
왜냐면 카뮈가 실존주의자 이면서
부조리를 말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란 아무리 본질적인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뫼르소처럼
실존의 문제에 부딪히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방인의 전반적인 내용으로 보면
실존에 처한 뫼르소이고,
이를 두고 본질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대립이 보인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살면서 선택을 해야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싶어하지만
실존을 사는 인간은
반드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면서 부조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뫼르소는 있는 그대로 솔찍히 말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랬다간 어떤 부조리한 상황이
발생할지 알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카뮈는 왜 이런 인물을 만들었을까.
부조리한 상황임에도 계속하여
이에 반하는 쪽으로만 가는
뫼르소란 인물을 왜 만들었을까.
카뮈의 실존주의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하여
우리에게 '반항'을 요구한다.
실존을 사는 인간이
부조리를 겪을 수 밖에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반항'이라는 것이다.
뫼르소는 반항하는 인간이다.
사회부적응자 처럼 보이기도 하고
약간 모자란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모습은 어찌됐든
반항아의 모습을 보이고있다.
억울해도 질질짜거나 거짓말하거나
회피하는 모습이 아닌
떳떳하게 자기 소신대로 사는 모습이다.
그러니 이 책은 뫼르소가 이상한 사람이라거나
살인이 악하다는 그런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언제든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생각 해 보고,
그때 어떤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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