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생 반전시위
사건의 발단
컬럼비아대 총장이 캠퍼스 안의
반유대주의에 대해서 의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반 유대주의는 우리 학교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할 것”
이 발언으로 미국 대학생들의 반전 시위가 시작되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미국 안에서도
중동 연구를 선도하는 대학 중 하나로
유대계와 아랍계 재학생이 많은 편이다.
또한 컬럼비아대에는 ‘해밀턴홀’이라는 곳이 있다.
미 초대 재무부 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인데
학생시위대가 여러 차례 점거해 저항의 성지가 되었다.
이 성지를 시작으로 반전시위가 시작되고,
많은 학생들이 체포되었으나
시위가 번져나가며 미 전역의 많은 대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내 최소 40개 대학에서
22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학생 운동가들과 협상을 하거나
최후 통첩으로 경찰을 부른 곳도 있다.
또한 미 전역의 정치인들이
일부 시위에 대해서는 반유대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하며 대학들에게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어게인1968
당 초 이번 시위는 반전과 이에 대해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이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공권력의 강경 대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까지 확산되고 있다.
11월에 있을 대선을 의식하며
입장을 확실히 하지 않는 바이든에 대한 불만이
계속해서 커져가는 모양새다.
그래서 그들이 우려하는 것이
이른바 ‘어게인1968’이다.
1960년대 후반에 서구의 곳곳에서
권위주의 타파와 기성 질서에 대한
거부 등과 같은 기치를 내건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통칭해서 ‘68혁명’이라고 불렀는데
1968년 4월 컬럼비아 대학교 사태가
이 운동을 크게 확산시켰다.
당시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반전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고
반전 시위대는 민주당 후보를
‘전쟁 찬성론자’로 비난 했었다.
그 충돌 장면을 목격한 미 국민들은
민주당 정권에 대해 전쟁을 가져온 정권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대통련 선거에서
‘베트남 철수’ 공약을 내세운
공화당의 닉슨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그러니
1.시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이라는 점
2.컬럼비아대에서 시위가 발화됐다는 점
3.반전시위라는 점
4.공권력에 의한 강경 진압이 있다는 점
등이 이번 시위와 같은 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의 입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친 팔레스타인 성향의 젊은 층도,
미 주류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유대계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대선 패배가 예상되는 바이든.
5월1일 대마초 합법화 법안을 제출했다.
40대 이하의 젊은 층에서 강한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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