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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독후감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줄거리 독후감

by 생각하는 남자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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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나날

 

가즈오이시구로
가즈오이시구로

 

줄거리

 

스티븐스씨는 영국의

달링턴 저택의 유능한 집사이다.

 

그리고 전 주인이었던

달링턴 경이 죽게 되자

새로운 미국인이 그 저택을 인수했고

이제는 그를 모시는 집사가 됐다.

 

새 주인의 배려로 

6일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 스티븐스.

 

그는 과거에 함께 일했던

하녀장 켄턴양을 만나기 위해

목적지를 켄턴양이 사는 곳으로 해 일정을 잡는다.

 

만나러 가는 6일간 계속하여

과거 달링턴 경을 모셨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때 자신이 추구했던 '위대한 집사',

'품위있는 집사'의 자질에 대해 자주 회상하곤 한다.

 

그리고 줄어든 현재의 직원 수에 대한 불만과 함께

다시금 켄턴양과 함께

일했으면 하는 마음도 일게 되어

그녀에 대한 회상과 기대도 계속하게 된다.

 

여행 후 결국 다시 만나게 된 켄턴.

과거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 어찌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잠시 추억 속에 잠기게 된다.

 

사실 전 주인 달링턴 경은

스티븐스가 존경했던 것에 비해선

평이 매우 좋지 못하다. 

 

세계 1차대전 이후

독일에 대한 경제적 압박에 대해

유한 태도로 화해와 평화를

주도하였던 달링턴 경이었지만

히틀러의 만행으로

결국 나치의 앞잡이로 몰렸기 때문이다.

 

켄턴은 스티븐스에게

'저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말을 하며

 

과거에 잡히지 말고 남아있는 나날을

잘살아보자는 얘기를 건낸다.

 

이에 스티븐스도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서는

새 주인분의 의도에 맞게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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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점

 

저자가 일본 사람인 것에 비해서는

내용이 이색적이게도

1930년대 영국 집사의 이야기여서 많이 낯설었고,

제목에 비해서도 집사의 이야기가 많아서 낯설었다.

 

누군가를 모셔본 적이 없는 나의 입장에선

스티븐스가 그토록 열변을 토하는

집사의 자세에 대해

처음엔 솔직히 잘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최대한 그가 되어보며 심정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내며

책에 몰입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우선 스티븐스는 보통의 작은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가 아닌

수없이 많은 하인과 하녀들을 거느리는

대저택의 집사이다.

 

그리고 주인인 달링턴은

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 간의

화해무드를 조성하기에 열성인 사람이었고

그런 다자간 회의를 이 저택에서 열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스티븐스가 투철한 직업정신 없이는

이런 곳에서 버텨내기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 한다.

 

툭하면 하인과 하녀가 눈이 맞아서

야반도주를 하니 골치 아프고,

 

자신 역시도 사사로운 감정놀음을

하지 말아야 하니 냉정해야 하며,

 

언제 주인과 손님들이

벨을 울릴지 모르니 늘 긴장 해야 한다.

 

절대 유능하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는 그런 자리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더 나아가서는

위대한 집사를 꿈꾼다.

 

그냥 유능해서만 되는 게 아니라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선 절대 옷을 벗지 말 것.

반드시 혼자 있을 때만 옷을 벗고 쉴 것.

감정적으로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남들이 주인의 품위를

훼손하는 일을 그냥 두지 않을 것.

 

대략 이러한 것들이

그가 생각하는 집사의 품위이고,

이 중에서 특히 감정놀음 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모범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주인께 매우 중요한 회의가 있던 날

자신의 아버지가 위독하였고 끝내 돌아가시는

일이 발생한 날에도 스티븐스는 흐트러짐 없이

본인의 의무를 다하여

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끌게 된다.

 

사실 좀 극단적인 경우라 뭐라 말하기 힘들다.

망치면 안 되는 회의에 집사가

흐트러지면 위험한 것도 맞고,

그래도 사람인데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길 미뤄야 하니 이것도 너무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큰일을 치른 스티븐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와중에도

집사의 일에 충실했다는 것에 대해

자신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뿌듯했던 기억이라 말한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를 뿌듯하게 만들었을까.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근거 있는 자신감 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감정제어라는 건 평소에 그렇게 크게 할 일이 없지만,

스티븐스처럼 생각 이상의

큰일이 닥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동안의 자잘한 문제에선 쉽게쉽게 대처해 왔기 때문에

큰 자신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큰 문제가 닥쳤을 때

감정제어를 해서 견뎌내느냐

아니면 무너지느냐는

내 감정제어의 근거를 마련해주게 된다.

 

때문에 스티븐스의 뿌듯함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속으론 울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겉으로 흐트러짐 없이

본인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

내심 뿌듯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근거가 되어 더욱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근거가 없을 땐 자신이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두려움이 공존하는 상태지만

 

근거가 마련된 지금의 상황에선

자신이 품위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너무 냉혈한이 아닌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 수도 있고,

꼭 저렇게 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울어야만

슬픔을 표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스티븐스의 아버지도

훌륭한 집사 출신이기 때문에

아들이 그렇게 하기를 바랐을 것이라는

생각도 맞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이 위대한 집사라는 것.

그리고 위대하다는 것의 조건이 품위에 있다는 것.

 

또 그 품위의 조건이 감정제어에 있었다면

그들은 그들이 추구했던 집사의 길을 갔기에

남들의 판단은 아무래도 생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느낀점 2

 

그냥 유능한 집사와 위대한 집사의 차이를

품위의 차이라고 하는 스티븐스.

그는 하나의 그릇을 가진 집사이다.

 

유능한 집사란 업무 능력의 향상이 그 목적이라면

스티븐스가 말하는 위대한 집사란

그 위에 품위라는 그릇을 추구하는

집사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위대하다는 것은

능숙함으로만 이뤄진다기 보단

어떠한 정신의 추구까지도 함께 추구해야

가능한 경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앞서 짚어봤듯이 많은 수의 하녀와

하인들이 야반도주를 하거나

심지어 집사와 하녀장이 눈이 맞아 도주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대체 왜 일어나는 것이냐 묻는다면

결국 직업 정신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인간적으로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 직업을 그만두겠다 하는 것이니

마다할 수는 없지만

 

그런 차원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하나의 임무를 맡은 사람의 태도에서만 접근해보면

이런 일은 정신의 부재라는 것이다.

 

군인정신으로 투철하게 무장한 사람들이

결국 전장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싸우듯이.

 

무언가 자신의 임무에서 물러나게 되는 일은

그렇게 임무에 대한 정신을 잃게 되었을 때 아닌가.

 

스티븐스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게 시킨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인가.

감정을 절제하라고 주인이 말한들 되는 일인가.

그랬으면 도주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았겠지.

 

그것은 위대한 집사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집사가 아니라 품위 있는 집사

위대한 집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품위와 위대함에 대해서도

어디에서 주어진 것이 아닌

자신이 연구한 것들이다.

 

무엇이 품위인지에 대한 의견은

많이 엇갈릴 수 있는 문제이지만

 

자신이 집사 생활을 하며 세운 품위에 대한 개념은

자신이 연구하여 얻어낸 결론이기 때문에

더욱 값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들의 주인에 대한 평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두고 넘긴 위기,

켄턴양에 대한 사랑을 두고 넘긴 위기,

그 두 번의 위기 뒤에 스티븐스가 느낀 뿌듯함.

 

그리고 그 날이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느낀 것.

 

그것은 스스로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과 함께

성취 후 생긴 여유가 가져다준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느낀점3

 

그런데 왜 제목이 남아있는 나날 일까.

내용의 대부분은 스티븐스의

과거 집사 생활의 회상인데

 

오히려 집사의 인생

더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오랜만에 켄턴을 만나

켄턴에게 들은 말이 힌트를 준다.

 

저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

그러니까 지난날에 대한 회상이나

후회에서 그만 벗어나고

 

이제 남아있는 나날을

여유롭게 즐겨라 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이들은 스티븐스의 일생이

참 어리석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버지 일도 그렇지만 켄턴양에 대한 사랑도

포기해야만 했던 그 점이 특히 그렇다.

 

그렇게 주인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대체 뭐라고 주인만을 섬기며 자신의 사랑까지

포기해야만 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물론 나도 스티븐스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생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기회일 수 있는

켄턴양과의 사랑인데

그걸 그렇게 참아야만 했나.

 

책의 뒷면에도 그러한 말들이 나온다.

젊은 날의 사랑은 지나갔지만

남아있는 날들에도 희망은있다

그 허망함과 애잔함에 관한 내밀한 기록

 

하지만 스티븐스에 대한

이런 비판은 좀 조심스럽다.

 

위에서 말 한대로 그가 평생 추구하는 정신이란 게

품위 있는 집사라면 그에겐 사랑보다 집사로서의

품위가 더 우선순위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이 우선순위인 대부분의 사람들 입장에선

그가 좀 어리석게 느껴질 수 밖에 없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이것은 바라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본인이 사랑 대신 집사의 품위를 택했다 하는데

사랑을 택하지 못했다 하여 삶이 허망했다니....

 

품위 있는 집사도 되고 사랑도 하고 그러면 좋겠지만,

둘은 함께할 수 없는 조건인걸 어쩌나.

 

나는 소수만이 갈 수 있는 스티븐스의 길을 통해

매력적인 집사의 모습을 보게 되어 좋았다.

 

때문에 남아있는 나날을 잘 보내라는 말은

그동안 집사로서 사랑도 못 챙기고 잘 못살았으니

남은 나날이라도 잘 살라는 그런 충고로 들리기보다는

 

이제 전 주인과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과

회상에만 잠겨 지내지 말고

지금 주인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여유 있게 즐기라는 말로 들린다.

 

전 주인과 함께 할 때는 행사의 규모도 컸고,

비판보다는 맹목적 충성을 해야 했던 힘든 시기였다면

지금의 주인은 직원도 적게 두고

농담을 좋아하는 미국인이니

 

이제 그에 맞게끔 여유로운

집사의 생활을 누리라는 것이다.

 

나도 하루 중 저녁을 가장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이것도 지난 하루를 잘 보냈을 때의 일이다.

 

아침과 낮이 뿌듯한 하루가 되었을 때

그날의 저녁도 그만큼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을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바로 직전의 시간이라 생각한다면

스티븐스의 한 인생으로는

다음 생을 맞이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이 경험하고 연구하고 걸어온

위대한 집사라는 길은 본인이 뿌듯하게 생각하니

인생의 아침과 낮은 잘 보낸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인생의 저녁이라 할 수 있는

노년만큼은 저녁의 불꽃놀이를 구경하듯이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인생의 저녁이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 차 즐겁지 못한 일이 있지 않으려면

인생의 낮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스티븐스처럼

분명한 그릇을 갖고 살아야 하며

그 과정에 오는 장애를

묵묵히 견뎌 내어야 함을 알고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스티븐스가 이루지 못했던

사랑과 그 밖의 바람들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충분히 치를만한 대가였다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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