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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독후감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줄거리 독후감

by 생각하는 남자 202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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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독후감

 

반쪼가리자작
반쪼가리자작

 

 

 

줄거리

 

메다르도 자작은 전쟁에 참가하여

어설프게 대포에 다가갔다가

적군의 대포에 맞아

몸이 반으로 조각나고 만다.

 

의사들은 그의 조각난 몸을 이어붙이고

꿰매어 반쪽의 인간으로

살아나게끔 만들어 주었다.

 

자작은 그렇게 반 쪼가리 몸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반쪽은 오롯이

그의 악한 면만이 남아있는 몸이었다.

 

고향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겁주고

온갖 악행을 일삼는 자작이다.

 

그러던 중 파멜라 라고 하는

소녀에게 사랑에 빠진 자작.

 

역시 그의 악한 성향대로

그녀에게 강제로 결혼을 요구한다.

 

한편 그런 와중에 나머지

선한 반쪽의 자작이 돌아왔다.

 

선한 반쪽은

악한 반쪽 자작과는 정 반대로

마을사람들에게 온갖 선행은

다 하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역시

파멜라를 사랑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두 자작의 모습에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고

결혼식장에서 만난 두 자작은

파멜라를 얻기 위해 결투를 했다.

 

그리고 결투 중 두 자작은

다시 반쪽이 났으며

의사 트렐로니에 의해

선한 자작과 악한 자작의

몸이 합쳐지게 된다.

 

그리고 자작은 전처럼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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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처음 제목을 접하고 나서는

자작이 자작나무를 얘기하는 것인가 싶었다.

 

자작나무가 반쪽이 나서

어찌 되었다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이야기를 접해보니

자작은 백작의 바로 아래 서열인

유럽의 귀족 칭호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는 메다르도라고 하는

자작의 반쪽난 이야기 인 것이고

그의 권위가 더해져 악행을

마구 일삼으면서도 마을에서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문학에 속해서 그런지

전개도 상당히 빨랐고,

 

작가의 의도대로 환상적인

분위기의 소설이기도 했다.

 

사실 죽어야 마땅한 상황에

한 사람이 두 조각 나고도

서로 살아서 만나는 것이니

판타지이기는 하다.

 

어쨌든 수월하게 책을 읽어나가긴 했지만

보면서도 계속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것은

과연 어떻게 악한 자작과

선한 자작을 저렇게 나눴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선함과 악함은

저렇게 단순하게 쪼개지는 것들이 아닌 건데

너무 쉽게 나눠놓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정황상 악한 자작은

살생, 폭력, 거짓말, 비도덕, 

강제, 폭언으로 대변되는 듯 하고

 

선한 자작은 불살생,  정직, 도덕, 친절

뭐 이런 것들로 대변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생각 2

 

악한 자작이 나타나 마을사람들을

괴롭히고 공포에 떨게 하는

그런 장면들이 이어지고

강제로 파멜라와 결혼하겠다하여

그녀와 겪는 갈등의 장면까지 쭉 이어져 오지만

 

가장 하이라이트는

선한 자작의 등장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악한 자작이

악마나 사탄이었다면

선한 자작은 구세주나 천사처럼

느껴질 법했기 때문이다.

 

즉 악마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천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 천사라 생각했던 선한 자작이

어째 내가 보기에 점점 꼰대나

잔소리장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살생도 아니 되오, 속임수도 아니 되오,

유흥도 아니 되오....

뭐 그리 아니 되는 게 많은지 답답한 것이다.

 

악한 자작의 횡포에 못 이겨 군사들이 나타나

선한 자작을 감싸며 악한 자작을 물리치자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아니 되오 아니 되오 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 선한 자작도 정상은 아니 구나 싶었다.

대체 정상적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 악한 반쪽이와 선한 반쪽이의 행태를 보아하니

이런류의 사람들이

정상이 아닌 것이로구나 알게 되었다.

 

참 일관성 있게 악하고 일관성 있게 선하긴 한데,

일관성이 있다고 하여 정상인 것도 아니고

친절하고 도덕적이긴 한데

렇다고 정상인 것도 아니다.

 

내 생각에 선한 반쪽도

비정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가 너무 지나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일관적이고, 지나치게 친절하며,

지나치게 정직하고, 지나치게 금욕적이다.

 

그리고 이 지나친 모습에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아

그만 그가 불편해지고 마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처음에

선한 반쪼가리 자작을 보고는

매우 반기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런 지나친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고 피하려한다.

 

때문에 이렇게 선하냐 악하냐를 떠나

뭔가 모르게 불편하고 답답한 구석이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알게 모르게

지나친 구석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게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게 정상이 아니로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 것 같다.

 

책에는 이 반쪼가리 자작들 말고도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종교적 박해를 받고 나와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모여 사는 신도들,

악한 자작의 말에 의해

문 기구를 만드는 기술자,

 

사람을 혐오하면서도 의사라고 하는 사람,

문둥병에 걸려 한곳에 모여 살며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

 

이들 모두의 문제점이자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두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려 반쪽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한눈에 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결국 상대하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지나치다는 걸 인식하고,

그런 사람을 불편하게 생각하여

경계하게 되는 게 있다.

 

지나치게 깨끗한 사람이 불편하고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도 불편하듯이 말이다.

 

이렇게 선한 자작을 꺼려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악한 반쪼가리나 선한 반쪼가리나

반쪼가리들은 불완전하고

정상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내 생각 3

 

그럼 착한 사람이 왜 잔소리꾼이 되는 걸까.

그리고 답답한 사람이 되는 이유가 뭘까.

 

선한 자작을 보니 그것은

어떤 상에 잡혀있기 때문이었고,

이것은 선한 것의 추구가 아니라

선한 것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로 사람들은 그의 선한 면이 싫은 게 아니라

그런 그의 선한 것에 대한 집착이 싫은 것이다.

 

선한 자작의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너무 유연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법하다.

 

오직 그것만이 선하고

오직 그것만이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 한다면

그건 선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고집쟁이일 뿐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결국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반쪼가리 자작은

악한 로봇이고 선한 로봇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로봇식의 대응 보다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었고 지혜는 인간적인 면을

간과하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에서 자작이 다시 하나로 합쳐진 이후에는

그가 현명한 자작으로서 마을을 통치했다하고

그 마을엔 평화가 찾아왔다는 해피엔딩이 나온다.

 

하지만 책에는 현명한 자작이라고는 쓰여 있어도

나는 그 마을의 백성들이

완전해진 자작에게 느꼈을 법한 인상이란 것이

현명함 보다는 인간의 향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딱딱하게 이것만이 옳다고 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반 쪼가리 자작들에게서

공포와 삭막함을 많이 느껴온 사람들이었을 태니

이제는 인간적인 자작의 밑에서

평화로울 마을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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