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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독후감

'헤르만 헤세' 크눌프 독후감

by 생각하는 남자 202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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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독후감

 

줄거리

 

1 초봄

 

병원에서 오랜 시간 있다가 퇴원한 크눌프. 

친구 로트푸스를 찾아와

그의 집에서 당분간 머물기로 한다. 

 

그곳에서 지내며 모두와 함께

활기차고 다정한 그리고 유능한 모습으로

지내게 됐고, 이웃의 처녀와

무도회를 함께 보내기도 한다. 

 

다만 친구의 아내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바람에 무도회를 끝내고 난

다음날 그 마을을 조용히 나온다.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방랑길에 이른 크눌프와 함께하며

그와의 있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는 크눌프가 어려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상처받은 이야기와

그 이후로 이렇게 방랑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연이 있다.

 

어느 날 아침 크눌프는 또 떠났고

이 사람은 고독을 느끼게 된다.

 

3 종말

 

크눌프는 폐결핵으로 몸이 많이 상해서

오래 못 살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의사 친구의 도움으로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마지막은 고향으로 돌아가 예전에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고향을 음미한다.

 

그러던 어느 첫눈이 내리던 날

신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크눌프는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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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크눌프는 헤세의 작품 중 네 번째로 접하는 책이다.

크눌프는 사람 이름인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느껴져 오는 크눌프에 대한 인상은

친절하고 다툴 줄 모르는 '분위기 메이커 아저씨'였다.

 

머무는 곳 없이 방랑하는 삶을 살지만

어느 곳에 가든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고

그가 가는 곳 마다 분위기가 화사해지니

반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입담, 매너, 재치, 교양 등

모든 걸 두루 갖추고 있으니

오히려 그가 머무는 곳이 민폐가 아닌

복 받은 집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하나같이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착하지 못하는 모습에 염려스러운 말도 한다.

 

그 정도 능력이면 교수를 하든 목사를 하든

뭐라도 했을 수 있었을 것이고

자신들처럼 결혼을 하여

안정된 삶을 꾸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의 자유로운 삶이

부러우면서도 내심 염려스러운 것이다.

 

사람들은 일하며 힘들게 사는데

그렇게 자유롭게 사는 그가 부럽다.

 

하지만 정말 있는 그대로를 보면

부러울만한 모습일까.

 

이것은 크눌프가 남들에게

부러워 보일만큼 자유롭게 살만한 능력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실제로 자식이 있는 친구의 푸념과 불만에 대해

크눌프는 이렇게 말해준다.

 

자네는 자식이 있는 것을 누릴 줄 알고

불평하지 말게나 나는 2 살배기 아들이 있는데

만나지도 못한다고

 

남들이 봤을 땐 크눌프가

세상 걱정 없이 혼자서 자유여행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에게도 평범한 가정 살이를 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자신만의 고충이 분명 있어 보인다.

 

뒤에 나오지만 그가 이런 방랑생활을 하게 된 연유에는

어려서 여자에게 입은 상처가 있었고

아내가 아들을 낳다가 죽는 바람에

아들을 입양 보내야 했던 사연도 있었다.

 

다른 누구였어도 속이 아프고

자유롭지 못하게 살 법한 환경에 처해있다.

 

자식이 있고 아내가 있고 집도 있는

그런 사람들도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것인데

자식도 못 만나고 떠돌이 생활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환경 탓이 아니다.

 

흔히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에게 갖는 편견이라는 게

그럴만한 환경이 뒷받침 되니까

그러고 살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크눌프의 상황만 보더라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많은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자식 때문에 불만이라는

친구의 푸념에 크눌프가 해 준 말 한마디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보다는

가진 것에 대한 만족을 했으면 하는

친구로서의 진정성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아니었나 싶었다.

 

이렇게 크눌프라는 사람은 그저 성향이 그래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직업을 구하지 못해 방황하는 사회부적응자도 아닌

가슴속 한구석에 어두운 과거와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겐 그의 자유로움이 부러움을 살 만큼

돋보이게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 생각 2

 

그의 매력이라하면 이런 저런 단어들을 하나로 묶어

따뜻한 시선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으며

그들 인생을 존중해줬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려는 사람들로 부터도

크게 노여워하거나 다투지 않고

재치 있게 그들을 무마시켰다.

 

친구의 아내가 접근 해 오는 것에

그들과 다투기보단 마을을 떠났고

직업을 권유하는 친구에게도 노여워함 없이 처신했다.

 

모든 상황을 물 흐르듯 처리하는 모습에

어느 곳에 머물든 그가 머무는 곳엔

평화가 깃든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친구로 삼았으며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었고,

매일 매일을 일요일처럼 살았다고 한다.

 

어떤 인격을 갖춰야 어디에 가서도

이런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걸까.

 

물론 교양이나 재치는 갖춰야 할 덕목이긴 하지만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분명 무엇이 있긴 해 보인다.

 

책을 쭉 보다보면 크눌프를 회상하는 사람에게

크눌프가 이런 말을 한다.

 

계획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중략)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몫을

철저히 혼자서 지고 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는 거야.’

 

방랑생활을 하며 수많은 집을

다니면서도 다툼이 생기지 않는 이유.

 

그것은 그의 

자신의 짐은 자신이 철저히 지고 가려는 태도

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당초 계획은 친구의 집에서 좀 더 머물 것이었지만

친구 아내의 태도 때문에 변수가 생겼고

그에 그녀를 탓하기보단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으로 여겨 그곳을 나왔다.

 

일반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변수는 늘 존재하는데,

하물며 방랑생활은 수많은 변수의 연속일 것이다.

그런데 크눌프는 이런 삶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보다는 그런 생활을 택한 것도

자신이니 그런 생활에 대한 편견이나 변수들은

모두 자신이 감당하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내 생각 3 

 

크눌프는 직업을 권유하는 친구에게도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은 아마 날더러

왜 판사가 되지 않았냐고 하진 않을 거야’

무엇이 되었느냐를 중시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것보다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크눌프는 목적 지향적인 삶 보다는

매 순간의 삶을 살고 있다.

 

하긴 사람이 관속에 들어가면

모두가 기억하는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지

의사나 판사와 같이 무엇으로 기억되진 않을 것이다.

 

크눌프의 꿈 이야기를 통해서도

삶에 대한 그의 자세가 들어난다.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에게 섞을 수는 없다.

꽃이 자신의 씨앗을 어느 곳에 퍼트리고 싶지만

씨앗을 뿌릴 뿐 퍼트리는 일은 바람이 할일

영혼은 모든 사람에게 새롭게 존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소리를 타인에게 퍼트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것이 의도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고 각자의 영혼은 각자의 삶에

새롭게 존재한다고 여기고 있다.

 

만약 내 영혼에 향기가 있다면

내가 내는 향을 모두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우연히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인연을 빗겨가 전혀 전해지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도 말했다. 꿈속에서 애인은 나왔지만

부모님은 나오지 않았다고.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던 부모님이지만

그 외모는 전달되었어도

영혼까지 전달될 수는 없었다고.

 

영혼의 전달이라는 건 이렇듯 얼마나 많이 사랑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했는지와는 별개로

바람의 장난 인 것이다.

 

그것으로 노여워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쩔 수 없으니

마냥 포기하고 가만히 있겠다는 것은 아니다.

 

영혼의 씨앗을 퍼트리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되

그 전달의 결과는 바람이 할 일이니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크눌프는 그렇게 자신의 방랑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늘 향기를 내며 다녔고 들르는 집마다

매번 영혼이 전달되진 못했지만

개의치 않았으며 때가되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닌 것이다.

 

자신의 할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

나타난 결과에 대한 초연한 자세.

타인에 대한 존중. 

모든 것이 물 흐르듯 하고 있다.

 

책 을 읽으며 내가 크눌프와 같은

실질적인 방랑자는 아니지만

이곳저곳을 다니고 이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도

크눌프 아저씨처럼 굳건하면서도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생각 4

 

이랬던 그도 죽기 직전 신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했으며

그동안의 삶에 대해 불만을 말했다.

 

정착하지 않고 살아온 삶이 잘못됐던 것인지,

이제 몸이 늙고 아파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홀로 쓸쓸히 있으니

자신이 잘 살아온 것인지 하는 그런 푸념이다.

 

하지만 젊어서 크눌프가

친구와 꽃을 꺾으며 했던 말을 기억한다.

 

금방 지는 꽃을 굳이 꺾어

자신의 모자에 장식하며 친구에게 말했다.

 

아름답다는 것은 늙어서 추해지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슬퍼지는 일이라고.

마치 불꽃놀이처럼 적절한 순간에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아름다움이란 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고

그런 때가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슬프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 크눌프는 병색이 짙어가던 시점에

고향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유년기 시절 경험했던 단 1시간만이라도

온전히 기억할 수 있다면

그 모든 시간을 희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죽어가던 그에게 그 단 1시간은

바로 그의 인생에 꽃이 활짝 피었던 시점이다.

그것도 매우 아름답지만 빨리 질 수밖에 없는

크눌프라는 꽃의 그 순간이다.

 

그 한순간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모든 시간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간이 인생이라는 불꽃의 적절한 ‘때’ 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의 그 좋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다 무가치한 것인가.

 

영특했고 활기찼으며 모두에게 친절했고

때론 비난도 받았던 그 때가

지금 아프고 외로운 것으로 인해

다 무가치한 것이 되는 것이며

그게 모두 없던 것이 된다고 신 앞에서 얘기하는 건가

그런가 크눌프.

 

신은 크눌프를 위로하며 그러한 과정에

늘 크눌프와 함께했다고 한다.

 

이는 진짜 신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크눌프 자신과의 대화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며 차차 감정이 누그러진다.

 

신은 묻는다.

아직도 불평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모든 것이 좋으냐,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느냐

제대로 되었습니다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가 지면서 잿빛으로 변한다고해서

그동안의 모든 것이 좋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 아름다웠던 순간까지도 없던 게 돼버리는 걸까.

 

내 생각에 여기에서 모든 것이라는 것은 인생의 부분 부분을

모두 아름답게 만족시켜야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아름답게 피었다가 지는 인생이라는 꽃의

과정을 불만 없이 보냈냐는 뜻이라 생각한다.

 

비록 인생에 어두운 부분도 있었고, 

비난도 받았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드럽게 대하고 교양있게 행동했으며

밝게 지냈던 그 때 피웠던 크눌프라는 꽃에 불만이 없느냐.

 

이것이 신이 마지막에 물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크눌프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다고 했다. 

불평이 없다고 했다.

 

이것은 짧지만 아름답게 피고 진

자신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헤세는 크눌프가 자신의 분신이며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다.

왜 그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대체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크눌프를 어떠한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얼굴에는 늘 웃음과 생기가 넘쳤으며

차별 없는 눈빛이 타인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신념이 묻어있어 강인했지만

다툼의 여지라고는 조금도 없는 부드러움이 묻어있었다.

 

들르는 집 하나하나에 웃음이 넘치게 하였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로 미묘한 향이 넘치게 하였다.

그저 바람처럼 왔다 갈 뿐

특별히 머물 인연을 찾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가 가는 곳 어디든

사랑의 씨를 뿌릴 기회가 있는 것이며

나머지는 바람이라는 인연에 의해 주고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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