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줄거리
떠돌이 프랭크는 시카고로 가던 길에
‘닉’이 운영하는 식당 겸
주유소에 들러 식사를 한다.
밥값이 없던 그는 닉의 제안으로
그곳에서 정비공으로 일하게 되고,
마침 닉의 아내 ‘코라’ 에게 반하게 된다.
늙은 닉에게 싫증나있던 코라는
치근덕대는 프랭크와 바람이 난다.
그러다 결국 두 사람은 닉을 살인하기로 계획.
프랭크가 망을 보는 동안
닉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코라.
하지만 지나가던 경찰도 있었고
정전도 되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된다.
혼비백산하며 물러선 두 사람이지만
다시 치밀한 살인계획을 세운다.
닉에게 술을 잔뜩 먹이고
교통사고를 가장하여 살인에 성공한다.
하지만 검사의 추궁에 불리해진
프랭크는 코라를 고소하였고,
서로 배신감에 감정이 극에 달하지만
변호사를 매수하여 무죄가 되고 만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프랭크는 코라가 자리를 비운사이
외지로 가 다른 여자와 바람피웠고,
그것이 발각되어 또 한 번 갈등을 겪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키스하다 그만 사고가 나
코라가 차 밖으로 튕겨나가 죽고 만다.
프랭크는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내 생각
읽어 내려가면서 막장이네 싶으면서도
그렇게 큰 거부감은 안 들었다.
워낙 이보다 더한 일들과
막장이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그렇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고
무덤덤한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전혀 모르던 두 사람 프랭크와
코라가 살인을 계획하게 된 것은
그렇게 큰 계기나
갈등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얼씨구나 하고 살인을 계획했다.
코라는 단지 남편과 이런 삶이
싫증났다는 이유인 것이고,
프랭크는 그런 그녀와
함께 살고 싶었던 것뿐이다.
도덕관념이 1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너무 뜬금없다 할 수도 있지만
당시 사회적 배경에는
대공황이라는 것이 있었고
미국인들은 깊은 허무와
도탄에 빠져있었다.
도덕적인 문제도
1차적 욕구가 해소 되어야
발동하는 게 보통이라 그런지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1차적 욕구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원래 욕구란 것이
누적된 것이 클수록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게 마련이라
둘은 서로가 계기가 되어
불꽃 튀듯이 욕망을
분출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첫 살인 실패 후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했던 다짐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것을 보면
끝장을 볼 때까지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들의 욕망이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어떤 것을 공유하며 사귀는가.
처음에 서로 반했을 땐
비밀연애 혹은 비밀 간통을 하며
짜릿한 사랑을 하는가 싶더니
함께 범죄를 공모하면서 부터는
공포, 초조함, 불신, 잔인함 같은
것들을 공유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공유하는 것들은 참으로 많고
그것은 남들이 모르는
둘만의 것들도 많다.
부끄러운 일이든 민망한 일이든
두 사람만큼은 아무렇지 않게 공유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부터는
늘 초조함에 시달려야 했고,
서로가 서로의 잔인함도 확인했으며,
프랭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코라를 배신하는 바람에 불신도 생겼다.
이런 기억을 공유하고도
계속 같이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랭크가 얼마나
매력적인 남자인지는 몰라도
금방 또 코라와의
잠자리를 통해 정분을 쌓는다.
어떻게 같이 살인을 저지르고
배신도 당했는데,
그런 남자와 또 잠자리를
같이하고 그럴 수 있을까.
이건 마음을 빼앗는 일이라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걸 아는 사람에겐 쉬울 수도 있는
일이구나 생각하게 했다.
이런 저런 말을 하고 타이르고 변명하고
그러면서 마음을 움직이려 해도
귀가 얇은 사람 아니고서는
그렇게 쉽게 마음이 다시 돌아서지 않는다.
하지만 프랭크는 초지일관
훅 치고 들어온다.
코라에게도 그랬지만
몰래 다른 여자 만났을 때도 그랬다.
다짜고짜 훅 치고 들어가면
여자들이 거부하다가도 오케이 한다.
그런 그들의 결과가 비록
죽음으로 치닫고 말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욕망이라
그들이 어떤 기억을 공유하고 추억하든
가장 쉽게 엮어줄 수 있는 것이
욕망을 채워주는 방법인 듯하다.
아무 때나 들이대라는 것은 아니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
마음을 사는 일에 효과 있듯이
사랑에 고픈 여자들에겐 프랭크 같이
젊고 매력적인 남자는 한방이 빠른가보다.
원하는 걸 바로 들이미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
미투에 걸리지만 않으면
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저속하고 비열하다는 말은
마음을 훔치지 못한
무능한 남자들의 야유일 뿐이다.
저속하게 훔치든 고상하게 훔치든
도둑들인 건 마찬가지다.
내 생각 2
아무튼 이렇게 서로가
불신과 불안을 공유하면서도
다시 한 번 욕망이라는 것으로
뭉치고 하는 이런 일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공황이라는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에
전반적으로 팽배해 있던
심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놀랍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시대에는 놀라운
일이었을지 모르나
이런 일이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 돼버린
그런 시대를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기도 한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가
제목 이지만 포스트맨(우체부)는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원고채택 여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작가 케인이 벨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뒤뜰에 나가있다가
항상 두 번씩은 벨을 울리는
우체부에게 영감을 얻은 것 이라한다.
주인공 프랭크는 그만큼
초조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초조한 일들이
매양 널려있는 시대이다.
사람이 사람을 못 믿어 불신이 가득하고,
그로인해 또 불안한 시대이다.
하지만 프랭크와 코라도
처음엔 사랑한 것이 분명했다.
서로를 믿었고 의지했다.
프랭크의 말에 순종하겠다고
했던 코라이고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했던
프랭크였다.
그런데 그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깨버렸던 것은
둘 사이에 생긴 불신이고
불신이 생기는 순간
사랑은 이미 불가능했다.
그렇게 불신은 곧 불안으로 이어지고
불안한 사랑은 서로를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결혼인 것이다.
결혼이란 건 불신을 다시 종식시키고
서로를 믿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프랭크가 위태 위태하자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한 것은
분명 그런 의도에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신뢰 회복이다.
이도 결국 결과적으로
교통사고로 이어져
사형에 처해지긴 하지만
이것이 인과적인 결과이든
우연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그렇게 불신으로 생긴 불안은
결혼이든 뭐든 다시 연결해줄
뭔가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둘 사이에 처음 생긴 사랑과 믿음은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을 죽여서라도
얻고 싶은 그런 단단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온도가 식으면서는
자연스럽게 헐거워져
작은 일에도 서로 어긋나고
불신이 생기기 쉽다.
이런 면에서 보면 연애할 때
이벤트를 자주하는 남자애들은
요란스럽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신뢰를 얻기 위한
행동이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걸 통해
다시 한 번 믿음을
확인하는 여자들이다.
남자들의 이벤트나 청혼에서
여자들이 확인하는 것은
그에 대한 사랑보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것 같긴 한데
믿음이 안 가는 것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순 건달에다가 야비한
바람둥이 같은 프랭크이지만
본능적으로 둘 사이에
온도를 체크하고 필요한 것을
말이 아닌 행위로 옮기는 점은
배울만하다.
이 책은 불륜남녀의
욕망에 휘둘린 잔혹사이지만
불신은 사랑을 무뎌지게 하고
믿음은 사랑을 단단하게 해준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 3
스토리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어떠한가.
닉과 프랭크 그리고 코라.
그들은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초지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초조함을 유지하고 종말을 맞는다.
닉은 어쨌든 간에
돈이 많아서 그런지
유흥도 즐기고
자기가 하는 일에 투정은 있었지만
크게 불행하진 않다.
하지만 프랭크와 코라는
만나기 전부터 종말까지
그닥 행복하지 않았다.
프랭크는 범죄경력도 많고
늘 방랑생활을 해야만 했으며,
코라는 미녀선발대회에
나가긴 했지만 말투 때문에
조롱을 받고 얼굴마담 역할이나
하다가 닉을 만난 것이고
팔자를 펴고 살고자 그와 결혼 한 것이다.
어찌 보면 프랭크와 코라는
욕정에 의해 부정을 저지른
어리석은 남녀로 비춰지는 측면도 있지만
사회적 분위기로 보아
상류층으로 가기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소설 내내 발버둥이다.
닉의 뒤통수치기,
걸리지 않을까 제 발 저리기,
실패 후 쫄았다가 다시 뒤통수치기,
이번엔 걸려서 서로 배신하기,
결국엔 돈으로 사건 무마시키고 결혼하기.
이런 프랭크와 코라의 상황이
자꾸만 나의 욕망을 건드리는 것은
이게 아주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렇다.
저들이 발버둥치는 이유도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예 하층민인 경우에야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만,
이 둘은 조금만 잔인해지면,
조금만 머리 굴리면 되는 위치에 있다.
사회에 일어나는 많은 범죄들이
그런 식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책에서처럼 간통이라는 것도
조금만 조심하고
조금만 뻔뻔해지면 된다.
그러니 책의 이런 상황들이
자꾸만 내 속에 있는 욕망을
건드리는 게 불편했다.
뭔가 조금만 부정해지면 가능한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이 지금에야 그렇게
특이한 막장은 아니지만,
당시에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조금만’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코라의 표현대로 기름진 닉을
끌어내리기만 하면
자신들의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끌어내렸어도 결말은 좋지 않았다.
결혼하고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 것만 같았는데,
뜬금없이 교통사고가 나서
코라는 죽고 프랭크는 사형 당한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그냥 나쁜 짓 했으니 인과응보다?
니들은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전자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후자라고 생각했다.
금수저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조금만’ 더 하다가 이뤄지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렇게 하다가는
가랑이 찢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유혹을
견딜 수 없는 게 사람이고
그런 유토피아를 좇는
사람들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프랭크와 코라를 통해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까뮈가 이 책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이방인을 썼다하는데
실존주의 철학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까뮈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그 부분이
어떤 부분이었을까 생각해보니
곳곳에 있는 듯하다.
우선 자신들은 그렇게
지은 죄에 대한 초조함에 떨고 있는데
오히려 변호사는 더욱 뻔뻔하여
돈으로 일을 해결해버린다.
원래 세상이 도덕률이 아니라
돈으로 굴러가는 곳이란 말이다.
이방인에서도 나오는 재판과정과 비슷한데,
죄인을 놓고 법정에서
온갖 인간적인 말은 다 하지만
결국 죄를 판단하는 잣대는 돈이고
정작 판단하는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
모두 썩 그렇게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프랭크와 코라 둘 다 종말로 치닫는 것은
발버둥 쳐 봐야 계급의 상승은 없다는
씁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까뮈에 나왔던
뫼르소라는 인물을 보자면
공감능력이 거의 상실된 인물이었다.
자기가 더워 죽을 것 같으니
앞에 있는 사람을 죽인 것뿐이라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여기에 나온 욕정커플인
프랭크와 코라는 어떠했나.
욕정에 눈이 멀어 공감능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둘 사이에 있는 욕정이야
공감이라기 보단
본능에 가까운 것이고
그런 본능적인 욕정 외에는
뵈는 것이 없는 상태이다.
아무튼 욕정 혹은 욕망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의 상실로 이어지고
이것이 사고치는 일로 이어진다는 것을
책에서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자신에게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은
뫼르소 같은 타고난
인격 장애가 아닌 이상
무언가 내게 심하게 잡혀있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이들도
자신들의 행위가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사랑이라는 욕정에 잡혔을 때는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범위까지를
사랑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욕정을 채울 수 있는
모든 범위가 다 사랑일까.
즉 그것이 범죄든 뭐든 간에
사랑이라는 욕정을 채우기 위함이니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 있다고 하냐는 것이다.
일단 그렇다고 정의 내리더라도
분명 사랑에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랑에도 질이 있다면
프랭크와 코라의 사랑이 저질로 보이는 것은
뒤로 갈수록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곧 욕정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맺어진 사랑을
어떻게 이어가는 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베르테르의 슬픔’도 그랬고
사랑이라는 욕정이
좀 막장으로 가는 경향이 있지만
프랭크와 코라의 막장드라마가
위로받기 힘든 것은
그들의 사랑이 좀 저질이라 그런듯하다.
인내와 희생과 순수함이 빛난던
베르테르의 고퀄리티 욕정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샀던 것에 비해선
두 사람의 욕정이 그렇지 못한 것은
저질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꼭 변태스러운 행위를 해야만 저질이 아니라
인내와 희생과 순수함 같은 것이 부족하면
그 욕정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모든 사랑을 어차피 같은 욕정이라고
치부하기엔 질적으로 좀 차이가 있다.
프랭크와 코라는 자신들의 행위가
사랑이라 생각했을지언정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하고
끔찍한 짓을 했다고 알게 되곤 했다.
한순간의 욕정이었는지 아닌지
그 달콤한 욕정의 순간에서
깨어났을 때 알 수 있는 것이다.
끔찍했다거나 후회가 남는다면
한순간일 가능성이 크다.
베르테르가 자살을 했는데
과연 그런 베르테르가
그전에 했던 사랑의 행위를 후회했을까.
후회 했다면 자살할 수 있었을까.
사랑이 어차피 모두 욕정이긴 하지만,
베르테르와 이 소설의 욕정커플을 비교해보면
욕정도 온유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마무리
생각해보면 이 세계가
욕정과 욕망으로 가득한 곳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수많은
끔찍한 것들을 공유하고
살고 있을 수 있다.
꼭 이 커플만이 그런 걸
공유하고 사는 게 아니다.
다만 워낙 그 안에서
취해 살고 있는 바람에
끔찍한 것을 끔찍한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취한사람은 자신이
취했다는 것을 모른다.
욕망에 취한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책속의 프랭크와 코라는
마치 음주측정을
거부하는 만취 운전자들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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