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독후감
줄거리1
화자가 ‘찰스 스트릭랜드’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던 이야기로 시작한다.
화자는 찰스를 알지 못했지만
한 비평가를 통해 알게 된 찰스의 부인과
조금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화자와 같은 작가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그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즐기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찰스는
지극히 평범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화자는 찰스가
여자와 바람이나 모든 재산을 들고
집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스트릭랜드 부인과 만나
직접 이야기를 접하며
그녀의 간곡한 부탁에
찰스를 만나 회유해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얼마후 만난 찰스.
소문과는 다르게 허름한 곳에
거처를 두고 있었으며,
바람났다는 여자도 없었고
오로지 혼자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집을 나온 것은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찰스.
냉정한 그에게 경멸감을 느끼며 돌아서는 화자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화자를 통해
남편 소식을 접한 스트릭랜드 부인.
그녀는 남편을 증오하며 자신의 살길을 찾아간다.
그로부터 5년 후 자신의
화가 친구 스트로브를 통해
찰스의 소식을 듣게 된 화자.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
찰스의 그림이지만 스트로브를 통해서는
대단한 천재성이 있는 화가라는 소견을 듣게 된다.
그리고 다시 찾아간 찰스와 대화를 나누는 화자.
오랜만에 만났어도 여전히 냉정한 모습에
그는 찰스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느낀점
책의 구성은 책을 쓴 화자가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고 느낀 점을 위주로 쓴 3인칭의 구성이다.
그리고 찰스는 실제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인물이며,
고갱의 삶과는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 책의 제목에서 나타난다.
‘달과 6펜스’ 달은 우리가 흔히 보는 달이고
6펜스는 화폐단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달이나 6펜스나
둘 다 빛나고 둥근 모양을 띄는 것은 같다.
다만 달은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상을 상징하고 있고
6펜스는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현실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니 책의 제목으로 보아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화자는 첫 도입부에
찰스 스트릭랜드를 만났던 일을
한번 회자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찰스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략 알 수 있게끔 해주었다.
우선 화자가 말하는 찰스의
가장 큰 특징은 개성인 듯하다.
그리고 그는 개성이 워낙 뛰어나서
천 가지 결점도 용서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찰스의 아들이
아버지의 인간적인 결점을 가리기 위해
아버지의 자서전을 좀 포장해서 출판한 것도
매우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 한다.
왜? 성질이 괴팍하든 뭐하든 그것도 개성이라
무난하게 포장해버리면
개성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자서전이 출간되고 나서는
그의 작품 가치가 하락했다 한다.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예술가가 개성이 있다면
천 가지 결점도 용서할 수 있다라니.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만 같다.
왜냐면 우리나라에선 연예인들이나 감독들도
도덕적으로나 양심적으로
작은 결점이 들어나기라도 하면
그 사람은 바로 매장당하지 않는가.
그 사람의 작품은 모두 역겨운 것이 되어버리곤 한다.
이게 어떤 차이가 있는가 생각해 보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두고
누가 만들었나를 보는 것 같고,
복면가왕처럼 복면 속의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 같다.
그리고 이런 맹점을 틈타
마케팅에 성공하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마케팅이라는 것이 사실
실속보다는 포장에 더 신경 쓰는 것이니
사람들의 이런 맹점을 파고드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튼 여기에서 처럼 천 가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두가지의 결점도 커버할 수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상을
진정한 예술가라고 해버리면 어찌 될까.
아마 예술에 몰두하는 예술가보다는
마케팅까지 잘해야만 하는
상업적인 예술가로 변모해야만 할 것이고
이는 결국 개성의 상실로 이어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심적으로는 정말 못된 인간의
작품은 보고 싶지도 않다고 할 수는 있기 때문에
못된 인간을 옹호하거나 그러는 것은 아니고
다만 예술의 세계가 그렇게 상업화되고 정형화되고
보편화되는 길로 가서는
개성있는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 뿐이다.
이병헌이 여자 문제로 골머리 썩었어도
다시 연기로 인정받는 바람에
계속 그의 연기를 볼 수 있듯이
홍상수 감독의 개성 있는 작품이 계속 나오기를 바라고,
그게 작품이라 하는 것을 내놓는 이쪽 세계에선
가능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개성있게 살지 못하는가.
이 책의 도입부의 내용으로 유추해보자면,
이런저런 사람들의 시선과
양심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것이다.
느낀점 2
화자는 또 하나 찰스를 보고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신은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그 무엇을 위해서
글 쓰는 것을 바보라 생각한다고.
왜냐면 작품은 시간이 흐르며 평이 바뀌고
유행도 바뀌고 하며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가는 글 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더는 것에서
보람을 느껴야 할 뿐
칭찬이나 비난 혹은 성공과 실패에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참 멋있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이런 멋있는 이야기에 맞게
멋있게 살지는 못하고 있는 걸까.
간단한 것 같다.
현실적인 결과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어느 작가인들 글 쓰는 즐거움에만
취해서 쓰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그 글이 돈이 되어야
생계가 유지되니 그런 것이고,
돈은 곧 사람들의 평에 의해
좌우되기에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써야 함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니 결국 직업으로 뭔가를 한다는 것에는
일정 정도 이상은 즐기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일이 발생하면 화자가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글 쓰는 즐거움.
그리고 생각의 짐을 더는 것에서 느끼는 보람.
내가 작가는 아니지만 공감되는 면이 있는 말이다.
생각의 짐을 덜어버리면
자연히 글 쓰는 즐거움이 있으며
외려 반대로 생각의 짐을 쌓게 되는 경우엔
자연스럽게 글 쓰는 즐거움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른 거 없다.
필력이 달리는 것 외에는
모두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이고
이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 수 있다.
느낀점 3
평범한 가장의 아버지 였던 찰스가
처자식을 모두 버리고 가출했다.
아내는 울고 있고 자식들은
내팽개쳐져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모든 재산은 찰스가
가져갔고 빈털터리가 되어있다.
위에서 말한 예술가의 용서할 수 있는
천 가지 결점 중 하나인가보다.
찰스는 왜 그랬을까.
그의 거처를 찾아가
회유하는 화자에게 하는 말을 보면
그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양심에 대한 호소에도 역시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아니 오히려 양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식이다.
일단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하니
찰스보고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건 죽으라는 소리다.
그러면 굳이 왜 가출을
해 가면서까지 그래야 했을까.
아내와 자식이 있는 곳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했으면 됐을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와버려야 했을까.
이것은 그가 실제로 ‘6펜스’로 상징되는
현실 세계에 대한 경멸이나
부정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그림이라는 달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못 살수는 있다고 하지만
현실을 완전히 외면해버리고 나오는 것은
그만큼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내와 자식들을 들먹이며
양심에 호소하는 화자의 말에도
자신이 심한 거 인정도 하고 받게 될
비난에도 어쩔 수 없다한다.
이건 더이상 현실적인 가치에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화자가 느꼈듯이 찰스의 아내 역시도
겉으로 들어난 체면만을 중시하여
찰스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지
실제로 찰스를 사랑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찰스의 소식을 들은 아내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남편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점이나
오직 겉으로 괜찮은 척 체면 차리기 바쁜 면이 그렇다.
아마 그의 여성 비하적인 발언들이 난무하는 것도
모든 여성을 그렇게 바라보기 보다는
아내와 같이 그런 위선적인
특성을 가진 여성들에 대한 비하같다.
한마디로 찰스가 바라보는
사람들이 말하는 양심 따위는 위선이거나
오십보 백보라는 식의 관점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찰스 자신이 잘나서
그런 위선적인 사람들을 경멸하기에
현실을 외면하고 나와
이상을 추구한다는 그런 것 보다는
너네나 나나 위선을 떨든 동정을 하든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인 듯 하다.
그러니 도덕률이나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 하는
칸드의 ‘정언명령’ 도 헛소리라고 말하지 않나.
이런 그의 말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회의가 있는 것도 같지만,
사실 있는 그대로를 보면 또 일리가 있기도 하다.
양심이 있고 없고 도덕적이고 아니고 나누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다.
잘해야 어설픈 동정을 할 수 있는
정도를 놓고 도덕적이라고 하거나,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다운 최소한의 도리를 하며 사는걸
양심적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 이상의 어떤 양심적이거나 도덕적인 일을
평생 얼마나 실천하면서 살고 있나.
그러니 오십보 백보라고 하는 말에 딴지 걸긴 힘들다.
사랑과 증오도 한 끗 차이, 선과 악도 한 끗 차이,
아름다움과 추함도 한 끗 차이. 그럴 수 있다.
다만 그렇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는 것을 알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찰스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서 그다음에 어떻게 살겠느냐는
분명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한 끗 차이지만 되도록 증오에 빠지지 않게,
되도록 악하지 않게,
되도록 추하지 않게 살기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느낀점 4
파리에서 화가 친구 스트로브를 통해 다시 알게 된 찰스.
예나 지금이나 행색이 초라해진 것 말고는
여전히 자신의 길에 대한 추호의 후회도 없다.
다만 그림에 대한 식견이 있는 스트로브에 의해
그의 천재성이 큰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서 스트로브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 보아야 한다.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갖추어야 볼 수 있다.’
아 그렇겠네. 그렇겠어.
과연 안목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도 유명한 세계적인 박물관도 많이 가보고
좋다는 문화제도 많이 봤는데 딱히 좋은 줄 모른다.
이게 다 작품을 보는 안목이 없어서 그러는 것일텐데
안목은 어디서 생겨나길래 내게 없는 걸까.
바로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이다.
스트로브의 말처럼 예술가의 작품은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야 한다.
그게 안목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직접 오감으로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지식으로는 어느 정도 알고 들어갈 수 있으나
일단 감수성에서 막히기 때문에
안목이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이고
상상력 또한 발휘되는 것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모든 이들이 찰스의 작품을 무시하였어도
스트로브만이 알아볼 수 있었던 찰스의 천재성은
그런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접근 할 수 있었던
그의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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